사라진 홍콩 - 우리가 '홍콩'이라 불렀던 것들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 아시아 총서 46
류영하 지음 / 산지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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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은 정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대로 살았다. 자유, 그러니까 무한 자유는 홍콩 정체성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장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p.10)


우산혁명 이후 보여준 중국의 대응들은 앞으로 전개될 슬픈 홍콩 사정을 볼 수 있다. '사라진' 홍콩. 여기에 모든 함의가 다 담겨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 책은 일단 전문 학술서는 아니다. 오히려 연구들 사이에 쌓여있던 감상들에 가깝다. 홍콩 정체성의 재구성 과정 논의에서 진화심리학에 기반한 편의적 사견들이 반복된다. 때론 우생학적 줄타기 속, '전두엽'으로 해명하는 보수-자유가 주요 사유축으로 보인다.


이 책의 문제로 두 가지만 언급한다.


1. 홍콩인들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지적.

홍콩 인구 7백만 중 5백만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지점에선, 한국의 6월 항쟁 때 시청에 모인 시위가 백만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2. 이득의 관점으로 바라본 제국의 통치

홍콩은 일본의 통치를 받았지만, 전쟁 직후 중국 대륙처럼 그런 반일 감정은 없었고, 일본 상인들도 1940년대 말에 홍콩으로 다시 돌아올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다. (중략) 일본으로부터 통치받은 경험은 도리어 영국에 대해 더욱 우호적인 마음을 만들었다. (p.130) 


지적한 문제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엉켜있다. 근대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들이 공통으로 겪는 '식민지 트라우마'라 볼 수 있다. 식민지 향수, 정치만 배제된 무해한 자유, 공산당에 대한 공포.


저자가 애정을 담아 홍콩 정체성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 풀어가는 내면에는 이러한 것들.. 식민지 근대화론과 보수반공주의의 근친관계를 보여준다.


실상 홍콩의 문제, 사라진 홍콩은 외부식민지(일본/영국)에서 내부식민지(중국)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타자에 대한 상상과 공감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을까? 타자에 대한 둔감성은 결국 자기 자신의 경험에 대한 둔감성에서 기인한다. 산업구조가 근대화했다든가, 생산력이 증대했다든가, 갖가지 이유를 붙여서 식민지시대의 진실을 덮어 감추려는 담론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 논리에 결정적으로 결여돼 있는 것은 “점령이란 치욕이며 인간성의 파괴”라는 관점이다. 이것을 직시할 능력이 없든지, 아니면 직시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그 시대도 나쁘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역사만을 속이는 게 아니다. 지금 점령당하며 고통받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서경식 「홀로코스트, 팔레스타인 그리고 조선」 (한겨레 2009.03.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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