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반경에만 닿는 마법 - Novel Engine POP
나나츠키 타카후미 지음, loundraw 그림, 현정수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생 때 찍었던 하늘 사진을 찾아보았다.

사진이랑은 말 그대로 담을 쌓고 살아왔기에 지금까지도 내 사진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어렸을 때 찍었던 것과, 졸업식이나 수학여행 같은 특별한 날에 찍은 굳은 표정의 사진들 밖에 없다. 그런 내가 순수하게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찍었던 사진이 하나 있다. 금방 찾아보았던 노을지는 저녁 하늘의 사진이 그것이다. 그렇게 이쁜 저녁놀을 본 게 언제인가 새삼 생각해본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꿈이었는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는 기억도 있다.

사람의 기억은 유한하다. 당장 저번주에 다녀온 해외여행도 벌써 기억이 흐릿하다. 이렇게 금방 휘발되어버리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사진은 존재한다.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그 찰나의 순간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졌고, 존재해왔고, 또 발전해간다. 이제는 기술이 발달한다는 것을 육안으로 구분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그 해상도와 색구현이 정밀해졌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더 좋은 카메라를 찾는다. 더 나은 기억의 저장방법을 찾는다. 어째서일까.

작품의 첫 장에는 의문의 전시회 홍보 문구가, 마지막 장에는 [스와 진]이라는 작가의 프로필이 소개 되어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게 되는 시기는 완전한 난수이기에 기간이 정해져 있는 전시회 일정같은 게 소개되어 있어도 의미가 없다. 즉, 가짜라는 뜻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실이고 또 본인도 그렇게 전제를 깔고 작품을 읽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장에 적혀 있는 작가의 프로필을 봤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손이 그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것이 공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딘가 ‘진짜 있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 라고 생각할 정도로 몰입했고, 책을 덮은 후에도 한참이나 여운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잊지 않게 남기고 싶어서 쓰는 글이 이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스와 진](이하 진)은 사진작가를 목표로 하는 남성이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소위 말하는 ‘인생샷‘을 찍게 되고, 그 피사체가 된 여성에게 사진 사용의 허락을 구하기 위해 찾아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집 밖에만 나가면 발작을 일으키는 병세로 인해 방에 난 창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여성의 이름은 [하루]이다. 우연히 찍힌 사진의 피사체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창을 열고 상쾌한 바깥 공기를 마시고 있었는데 자신을 찍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창문을 닫았고, 그 순간이 사진에 찍혔다. 이내 사진 사용의 허가를 받으러 온 진에게 하루는 조건을 제시한다. 밖을 나갈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서 바깥 세상을 보여달라는 것. 요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이다.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반드시 사진의 허가를 받고 싶었던 진은 이 제안을 승낙하고, 훗날 사진작가로서 데뷔할 계기를 만들어준 하루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작 중 주인공의 친구이자 유능한 사진작가인 [하나키]는 진이 하루를 찍은 사진들을 보고 무언가 결정적으로 부족하다고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는 하나키 본인조차도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는데, 하나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공표하고 나서야 이를 깨닫고 알려준다. 사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사이에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를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훗날 진과 하루의 전시회가 열렸을 때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치된 부스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테마의 주제가 되기도 한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작품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하루의 병과 가족의 연관성,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연료가 된다. 하루와 가족 간의 깊은 골을 채워주는 요소는 역시 사진이었다. 다만, 피사체가 하루에서 부모님으로 옮겨간다는 점이 달라진다. 진은 어떻게든 하루의 병을 낫게 하고 싶었고, 필시 그 키를 쥐고 있는 건 하루의 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까지 찍어온 하루의 사진들로 만든 포트폴리오를 하루의 부모님에게 보여주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가족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던 하루는 지금의 자신들처럼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역시 그 옆에서 피사체로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자신도 발견한다. 하루는 자신이 가족에게 미움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를 계기로 점차 병세는 호전되어 이내 극복하기에 이른다. 병약해서 늘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하루를 시기해 증오하던 히나(작 중 하루의 여동생)도 진심어린 하루의 마음을 듣고 결국 마음을 연다.

참 이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긴장감은 나를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시킬 수 있게 했다. ‘마음의 병은 약도 없다.‘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과연 그 말대로인 것 같다. 탈수증세를 보이는 환자에게 물이 필요하듯,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온기가 필요하듯,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마음이다. 드는 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휘발되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선 사진과 같은 매체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기록매체로 글을 선택했지만 수단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가장 적절한 것이 있는 법이다. 감정은 글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글을 택했고, 여행길의 풍경들은 사진이 아니면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사진을 택했다. 공연의 여운은 영상이 아니면 남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촬영을 택했다. 하지만 사진만이 주는 특별한 여운이 있다. 작가가 그 매체로써 사진을 택한 것도 분명 그런 이유일 것이다.

멈춰있는 장면 속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웃고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선 울고 있다. 쉴새없이 형태를 바꾸며 흘러가는 구름도, 아주 느리지만 확실히 움직이고 있는 별들도, 자라나고 또 죽어가는 나무들도 사진 속에선 [찰나]에 [영원]히 머무른다. 완벽히 상반되는 두 개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사진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사진을 좋아하지 않던 나조차도 무던히 이런 말들을 내뱉을 수 있게 해준 이 작품의 감상을 더 많은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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