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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평점 : 
역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고단하다. 사학도로서 끊임없이 역사 그 자체와 역사라고 여겨지는 여러 가지 책들을 봐 왔지만, 역사가 무엇이다라고 명확하게 답을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단지 그 많은 각자의 주장들을 통해서 나만의 역사관이 생겼을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나마 답에 가까운 생각일지도 모른다. 카는 대담하게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역사를 정의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정답은 아니었다. 카 이후에도 다양한 정의들이 만들어졌고,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는 그 논쟁은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그렇게 다양한 정의들을 읽노라면 역사가 무엇이지에 대한 답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역사 또한 결국은 각자의 생각의 모임이지 그 이상의 실존하는 무언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때 과거와 역사를 구별해야 할 것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과거는 발생했고 존재했고 그리고 사라진 것이나, 역사는 발생하고 있고 존재한 적은 없으며, 끊임없이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하며 변형되는 무언가인 듯하다. 또한 역사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그 기본에는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며, 역사의 존재나 인식에 대해서는 철학적 사고가 필요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린 역사라는 것이 학문이고, 인간이 만든 어떤 것이라는 것 외에는 그 이상의 틀짓기를 할 수 없다. 역사는 아직도 계속 그 범위를 줄이거나 늘리거나 반복하며 그 무엇이든 되고, 그 무엇이든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카를 존경하며, 그 외의 많은 역사가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답을 제시해주진 못했음도 나는 말하고 싶다. 역사는 그것이 지닌 인문적 요소(이 또한 인간이 부여한 것이지만)로 인해 수많은 그것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허용하고 정답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답은 앞으로도 내려지지 못할 것이다. 답이 생기는 순간, 즉 모든 학자가 인정하고 오직 유일한 정의로 역사가 틀 지어진다면, 우린 역사를 잃고 역사가 아닌 또 다른 그 대체의 무언가를 얻은 것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역사이며, 카에게서 얻은 교훈이다.
그럼에도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의미있는 이유는 그가 답을 얘기하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각자의 답을 세울 수 있도록 그 재료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저마다의 생각을 허용하는 학문이다.(이 생각 또한 나만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철학에서 답이 존재하지 못하듯, 역사 또한 답이 존재하지 못한다. 하지만 철학에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사상이나 말이 탄생하듯, 역사도 그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들이 한 곳에 어울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수많은 동서양의 이전의 학자들은 그 장소에 지어지는 갖가지 건물들을 세우고 다시 다른 이들에게 자신만의 건물을 지을 재료를 제시해주었다. 카는 그 중에서도 현대 역사학에 크나큰 재료를 제공하였고, 그것이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 담겨있는 것이다.
만약 카가 답을 말했다면, 우린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린 1+1=2라는 것처럼 답 내려진 그 무언가를 그다지 성심껏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교과서라든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로 듣고 기억 속 어딘가에 둘 뿐일 것이다. 하지만 카를 포함해 그 누구도 역사라는 것의 답을 주지 못했기에 우린 이 책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