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전집
한하운 지음, 인천문화재단 한하운 전집 편집위원회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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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하운에 대한 기억은 국어 교과서의 시 한두 편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대표작 ‘파랑새’를 두고 한센병 환자여서 갇혀 지내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유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작품이라고 (배웠었다고) 기억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학생이었었다. 학교 다니기를 그만둔 지 십수 년이 넘은 지금, 나는 가끔 모자란 교양을 두꺼운 비문학 서적 읽기 또는 이름난 작가의 전집으로 보충함으로써 있어 보이기를 원하는 일반인이 되었다. 그 일반인의 인터넷 서점 구경 중에 목격된 상품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사서 읽은 데는 다른 계기도 있었다. 2016년, 업무 관계로 소록도에 1박 2일 방문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 할매도 만나고, 소록도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성당 주임신부님의 배려로 이목구비와 손발이 뭉툭해진 음성 한센 환우들과도 만났다. 그 기억이 강렬했던 까닭에,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전집에도 눈길이 가 닿았던 것이다.


시 두어 편으로 알던 시인의 전집을 독파했을 때, 나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내가 생각지도 못했음을 깨달았다. 대표작이 교과서에 실릴 정도면 그 기저에 얼마나 수다하고 검증된 작품들이 있었을 것이며, 자유로운 삶을 향한 애통한 절규의 시를 쓸 정도면 얼마나 답답하고 북받치는 부자유와 억압이 있었을 것인가. 또한 부끄럽게도 내가 상상도 못했던 뜻밖의 사실들. 한하운은 무려 유학까지 가서 수의학을 공부한 인텔리 청년이었고, 발병해서는 주변인들의 외면과 풍찬노숙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으며, 한센인 정착촌에 몸붙인 뒤에는 한센인들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질병도 빈부 계급을 가려서 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인텔리도 한센병에 걸리고 거지 신세가 될 가능성, 흉측한 문둥이도 뜨겁게 사랑할 가능성, 비참한 문둥이 거지도 자신과 동지들의 존엄을 지키려 일어설 가능성 같은 건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인생사를, 우리가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한하운은 절실한 의지 위에 탄탄한 문장력과 명철한 지성으로 써서 남겼다. 웬만한 장편소설 못지않게 드라마틱하고 견고하게 짜인 수기를 읽고 나니, 그가 남긴 시들은 문둥이의 육신을 외면하고 저주하느라 그 안의 인간까지 매도해 버리고 마는 무정한 세상에 대한 날선 투쟁으로 읽힌다. 


뻔한 독후감이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한 줄로 간단히 요약되고 마는 그의 대표작 ‘파랑새’의 울림이 실은 얼마나 큰 진폭을 지닌 작품인지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한하운 전집은 시간을 내어 읽을 가치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집에 담긴 한하운의 다양한 산문들은 재밌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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