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지혜사랑 시인선 8
전순영 지음 / 종려나무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지난 40여년 동안 연구기관에서 누에와 뽕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 서점의 서가에서 우연히 전 영순 시인의 시집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의 제목에 끌려 시인은 이것들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썼을까 흥미를 가지고 시집을 열었다.

'오늘도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사각사각 시간을 갉어먹고 있다.'며 열두 가지에 열린 뽕잎을 차례로 갉아먹고 이제는 다섯 잎이 남아 있으며, 다시 새 뽕나무가 한 그루가 시인의 앞에 서 있을 것이라며 뽕나무와 뽕잎을 세월로 설정하고 자신은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의 표현은 과학자의 시선처럼 예리하지만, 그러나 뽕나무와 뽕잎과 누에를 등장시켜 세월의 흐름을 따뜻하고 깊이 있는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한결 같이 매일매일 꼭 같은 초록 잎을 먹지만 똥의 색깔은 다르다며 일상 생활의 다양함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선 채로 시집을 넘겼다. 그리고 '가을 한 잎'에 멈추고는 읽어 내려 갔다.

'밀봉해 묻어둔 처녀/그 처녀를 담아 줄 그가/재 되어/강물에 뿌리고 돌아오던 날 밤//나도/그 창 밑에 몸을 눕힌다/가을 한 잎으로(일부)

창 밑으로 몸을 눕히는 낙엽을 통해 그의 처녀을 가져갈 사람을 재로 만들어 강물에 띄우고 돌아온 심정으로 자신을 겸허히 땅에 눕히는 모습을 풍경화처럼 그렸다. 시인은 시를 통해 인생에서 맞닥드렸던 쓰고 신 경험들을 깊고 따뜻한 시어로 풀어내었다. 나는 오랫만에 시집을 한 권 얻은 기분으로 카운터로 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