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포이에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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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은 중세 가톨릭의 잔인함을 보여주었다.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의도로 개설된 군은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 모든 행위를 정당화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목 앞에 칼을 갖다 대었다. 지나가는 곳곳마다 이교도의 시체는 널브러져 갔다. 기독교의 본질은 박애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불쌍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신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기독교 신자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많은 종교인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 일부는 성경 교리를 따르고, 그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만이 하나님을 따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신도가 신성시하는 그 책은 인간의 손을 거친 책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유일신 신앙에 이 신교의 성격이 상당수 섞여 있다고 한다. 신과 사탄의 대립이란 것은 조로아스터 교의 선과 악의 싸움을 기독교가 흡수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개입은 성경에 모순을 만들어 내었고 하나님의 뜻은 점점 흐려졌다. 그리스도교가 언어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신의 마음을 헤아릴 방법은 무엇일까?

 

엔도 슈사큐는 그리스도 문학가이다. 그는 부모로부터 종교를 물려받았고 자신 나름의 사색 끝에 스스로 기독교인이기를 바랐다. 슈사쿠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을 직면할 때 비로소 신의 뜻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책 <침묵>에 나온 후미에라는 소재는 바로 인간 나약함의 증표이다. 책 배경인 쇄국 상태 일본에서 선교사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종교를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후미에(예수상이 새겨진 동판)를 밟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오랫동안 믿었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밟는 행위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보이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다. 신이 완전히 복종하는 인간만을 원했다면 나약한 모습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에 두려워하고 약점을 자꾸 보이는 인류의 행동은 모두 신이 계획한 일일 수 있다. 저자는 종교인과 비종교인 모두가 자신의 약점을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신이 숨겨둔 뜻이 보인다고 한다. 인류를 사랑해 모든 죄를 끌어안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지옥에 보낼 거 같은가? 오히려 그마저도 계산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받아들인 존재는 강해진다. 종교인은 그 안에서 신의 뜻을 깨달을 수도 있고 비종교인은 개인이란 존재에 대해 성찰해볼 수도 있다. ‘가 흔들릴 때야 인간은 비로소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규율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슈사쿠는 종교의 이야기를 빌려서 말하고 있지만, 본질은 인간의 성숙이다. 성숙한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한다. 이 책에서 슈사쿠는 모든 인간이 종교인일 필요는 없지만 사랑은 가져야 한다고 독자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며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확실한 것만이 가득하면 타인은 들어올 수가 없다. 불완전해야 비로소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다. 서로를 위하는 감정이 충만할 때 비로소 신의 자식들은 부모의 뜻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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