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감옥
고경숙 지음 / 개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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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수상소감을 하여 신선한 울림을 주고 있다.

고경숙 소설가도 우리나라 7,80년대의 엄혹했던 독재상황에서의 민주화운동이라는 굵직한 시국적 사건들과 직접, 또한 당사자의 아내로 연결되어 있어 그의 개인적 서사성이 그 시대의 창의적인 한 지표로 매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문학이란 결국 자아로부터 시작되어 세계의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보면 그의 여정이 작가로서의 최고의 길인 듯해서 부럽기까지 하다.


작가는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의 부인이다. 임선생은 시퍼런 유신 치하에서 날조된 문인간첩단 사건과 유신 말기의 최대 공안사건이던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던 분이다. 작가는 그의 아내라는 것 때문에 서빙고로 잡혀가 취조를 당했는가 하면, 심지어 아들이 다니는 고교에서 학내문제가 일어났을 때 시국사범 전과자 아들이라는 이유로 주범으로 지목되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생생하게 엮어낸 작품을 읽다보면 너무 기가 막혀서 억! 소리가 저절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던, 오히려 더욱 당당해지는 작가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다시 확인받게 된다.





남편과 관련된 ‘남민전 사건’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푸른 배낭을 멘 남자>에서는 남편을 내놓으라고 한밤중 형사들이 노인과 아이들만 있는 집에 문을 걷어차고 유리를 깨고 총구를 들이대는가 하면 구둣발로 방마다 돌아다니며 천장을 찢고 서랍을 뽑아 엎고 방망이로 벽을 치며 몇날 며칠을 죽치고 앉아 서가의 책을 검사하고 쏟아내며 한 가정을 지옥으로 물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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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패악의 시간이 <5박 6일>에서도 재현되고 있는데 10. 26 이후 곧바로 들어선 전두환 쿠데타에 대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시위를 하고 있을 때 보안사는 학생들의 배후로 대학교수들을 잡아와 협박을 하고 사표를 받아낼 때 주인공 진영에게까지 학생과 직원임에도 남편이 시국사범으로 투옥되어 있는 것을 빌미로 사표를 쓰라고 겁박을 가한다.

이 5박 6일 동안의 서빙고 유치장에서의 있었던 경험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과 대학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활화산 같은 시위 상황과 자기 안위만을 도모하는 교수들의 비굴한 민낯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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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중에도 <봄바람 부는 날> 처럼 벅찬 감동이 저절로 솟아오르는 작품도 있다.

운동권 남편을 둔 찬옥의 시선으로 역시 운동권인 동생이 같이 활동한 감옥 동기생을 시누이를 맞이하는 결혼식의 풍경을 다룬 작품이다.

이미 운동권 사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로서 또 그런 며느리를 맞아들여야 하는, 게다가 사돈조차 나타나지 않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결혼식인데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나타난 운동권 선후배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시던 신부, 목사, 변호사들까지 대거 참석해 “재판 때 보던 얼굴들이 시국대회라도 여는 것처럼 서로를 반기며 왁자지껄한 풍경”의 장면을 읽노라면 독자 역시 저절로 흥겨워지는 것이다. 더구나 참석하지 않던 신부 부모가 늦게라도 나타나자, 놀이패까지 어우러져 마당 가득 울려퍼지는 함창 소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의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

파리처럼 목숨이 오가는 위험 중에도 옳은 일을 함께 하는 흥겨움을 누구라서 이처럼 생생하게 나누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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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가장 속이 아리고 젖어든 것은 <어머니의 천국>이었다.

1983년 여의도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한창일 때 노모가 자기를 그 자리에 데려다 달라고 큰아들한테 부탁을 한다.

그건 6.25 때 헤어진 아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딘가에 있을, 그러나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아들에게 엄마인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그러기까지의 사정을 보자면, 아들 셋 중에 맏이인 큰아들이 토목기술자로 징집되어 북으로 갔다가 부대가 전멸하는 바람에 반죽음이 되어 걸어 걸어서 서울 집으로 돌아왔는데 동생 둘은 형을 찾아 나섰다가 북의 군인이 되었다는 것.

노모 혼자 폭격 맞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그 덕분에 큰 아들은 살아났지만 이후 휴전이 되고 십 수 년이 지나고서도 돌아오지 못한 아들은 빨갱이로 지목되어 공안경찰의 감시와 협박이 멈추지 않았던 것.

그런 세월을 살아온 노모는 가족 찾기 방송이 진행되던 여의도를 그림자처럼 지키다가 마지막 진액까지 소진한 듯 일어나질 못하더니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아들을 지켜줄 부적을 손에 꼭 쥐고 하는 말, “유…운호(막내아들)가 오……면 달아나라고……해.”

그러면서 손자한테 늘 하던 말을 다시 들려주려 애를 쓰다가 마침내 두 눈을 감고 만다.

그 마지막 말은 넓은 묘터를 만들어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실종된 삼촌들 묘까지 꼭 한 자리에 모이게 하라는 것.

지상에서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죽어 묘지에서나마 만날 수 있기를 바랐던, 그것이 어머니의 천국이었다는 것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몇 발짝만 넘어가면 거기가 바로 북이고 여기가 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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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때 운동권 소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새 과거로 묻혀가고 있을 때 작가의 생생했던 서사가 40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나와 과거가 결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피와 살을 바쳐 이 나라의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남북의 고착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주변 패권국들의 횡포는 형태만 바꾸었을 뿐인데 우리는 오히려 더 이기적이 되고 물질적 풍요만을 좇아서 만사에 급급하고 있지는 않는지.

지금 발 딛고 있는 우리의 현실 근간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굵직한 성찰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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