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시기가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이 속상한 매일이다.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변하지 않는 자신과 변화에 도전하기도 어려운 통장에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오늘이었다. 계나의 모습은 나와 너무 닮아있었지만, 적어도 그녀는 시작할 2000만원과 대기업 경력 3년이 있었다는 것이 다르겠지. 간신히 모은 몇백만원도 보증금으로 채우고 나면 월세 걱정,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자격조건. 뭐, 넋두리를 늘어놓자면 끝도 없이 비참해질 수 있는 게 내 현실이니 여기서 정도껏 끝내본다.이 모든 게 결국 내 탓이려니 싶어지니까.계나는 떠났고 행복해질 가능성이 보이는 발판을 마련했다. 가능성이니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완벽한 사회는 없고, 어차피 한국 뿐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허희 평론가의 말마따나) 가까이서 보면 정글 멀리서 보면 축사니까. 근데 난 허희씨와 다르게 계나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신분 상승이라는 건 커피 마실 여유는 부리면서, 일년에 한달은 쉬고, 먹고 싶은 거 사먹을 수 있는 정도 였으니까. 동생이 베이시스트를 만나는 것에 냉소적이게 변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에서 하고싶은 걸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순 없으니까. 손익을 따지는 사고가 잘못되어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손익 기준은 (내가 생각할 때) 인간적인 품위 유지 수준이지 않나? 응, 그러니까 난 계나가 궁극적으로 근원적으로 행복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론, 그리고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 수 있을 거 같다. 적어도 그녀는 궁핍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토대를 마련한 것 같거든.
(추리 소설에 문외한이지만)정통적인 추리물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일곱편을 읽어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추리를 하지 않는 (사실 못 하는..) 내겐 좀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만 마지막 편에서 책의 마수에 빠진 신이치로의 추리가 내달릴 때의 박진감이 뛰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개인적으론 상편보단 하편의 이야기들이 더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