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연습 - 레슬리 제이미슨

『공감 연습』을 읽고 있던 시기에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의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중의 한 남자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상태였는데 의사들은 무슨 병인지 전혀 알아내지 못 했다. 그렇게 몇 년의 무력한 투병 기간이 지났고, 회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은 그 자신과 어머니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네들의 얼굴엔 희박한 바람보다 짙은 굴복의 흔적이 묻어났다. 아무도 설명할 수 없기에, 설명될 수 없기에 그의 고통은 의사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제이미슨의 책에도 ‘모겔론스‘이라는 질병이 언급된다. 모기스들-모겔론스를 앓고 있는 환자들-은 피부 밑에서 이상한 섬유가 있다고 주장하며 의사를 찾는다. 그러나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그 병을 ˝실제˝하는 병인지 ˝망상˝에 불과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확실하게 결론을 내지 못 하고 대중과 의사들은 그들을 *세계에서 가장 큰 농담의 주제 p.59*로 전락시킨다. 제이미슨은 그런 상황에서 열린 모기스 총회에 참석한다. 모겔론스라는 병의 실체에 대해 다가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민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지는 사실성이 어떤 부류인지p.76*를 알기 위해서. 나아가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p.102*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보란듯이 걸치고 있어야.p31 *하며 나의 고통이든, 타인의 고통이든, 정체가 불분명한 고통은 공감을 살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고통받는 이의 이마엔 화인이 찍힌다. 낙인은 결국 상처받은 이를 (일반적인)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 분열을 일으킨다. 제이미슨의 글은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시도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나르시시즘적 자기연민p.330*처럼 비치고 싶지 않아서 일까? ‹공감 연습›에서 쓴 낙태와 심장 수술 경험, ‹타격의 형태론›에서 언급되는 묻지마 폭행 사건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해 색다른 형식으로 쓴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형식의 유효성은 차치하고서, 사지를 잃은 병사가 타자의 신체적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듯 그녀의 고통은 타인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낙태를 둘러싼 주변 사건과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분석하여 재구성한다. 과거의 자신과 타인에게 귀기울이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상상한다.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을 하고 있다고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충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어차피 그 감정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찾아올 테니까. 남들도 하는 일이라는 평범성이 아픔에 대한 예방접종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P.29*

*사람들은 커터들이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 그 행위를 한다고 말하는데, ˝단지˝라는 말이 왜 붙을까? 관심을 요구하는 외침이 궁극적인 범죄, 꼴도 보기 싫은 것, 하찮은 것으로 자리 매겨진다. 마치 ˝관심˝을 원하는 게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일이라는 듯 말이다. 그러나 관심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그리고 관심을 준다는 건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물 중 하나가 아닌가?p.314*


그러나 아무리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해도,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에게 가상의 자기연민을 한바탕 투영한 것p.48*에 지나지 않는다면, 한낱 몸짓에 불과하다면 공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이미슨은 이렇게 말한다.



*공감은 단지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을 확장하겠다는 선택. 그것은 (중략)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때로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는 그러기를 요구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보살피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보살핌이 공허해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나 자신의 슬픔에 깊이 빠져 있을지라도, 이렇게 몸짓을 해 보이겠다고 말하는 것,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나 정신 상태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깎아내린다기보다는 인정하는 것이다.p50*


제이미슨은 공감에 대한 드러나지 않는 경멸과 오해, 그리고 두려움에 대해 작가 본인의 경험과 석학의 지식을 버무려 써내려 간다. 고통과 아픔마저 상대화되어 스스로조차 위로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이라고 말한다.


*상처를 일축하는 것은 편리한 핑계를 준다. 더 많이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더 이상 말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를 준다. P.360*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들어야만 한다고, 제이미슨은 쓰고 또 쓴다. 그녀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 피해가 개인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바뀔 때, 유아론적인 것에서 집단적인 것으로 바뀔 때, 비로소 고통은 그 자체를 넘어선다.p.356*

*나는 고통을 페티시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의 재현을 멈춰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연기된 고통 역시 고통이다. 사소해진 고통 역시 고통이다. 나는 클리셰와 연기라는 혐의가 우리의 닫힌 마음에 너무 많은 알리바이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며, 우리 마음이 열리기를 바란다.p.360*


<본 서평은 문학과 지성사 이벤트를 통해 책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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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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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어스름’이란 단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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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시오리코 씨와 끝없는 무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7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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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권은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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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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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좋아함. 좀 어설퍼도 청소년 문학이라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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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미란다 줄라이 지음, 이주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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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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