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함락 1945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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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사람은 대략 5천5백만명으로 추정된다.(기근, 자연재해, 전염병 등 간접적인 원인까지 포함하면 7천만명으로 늘어난다.) 이전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던 제1차 세계대전의 3배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다. 2차대전 중 가장 막대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일개 전장은 독소전으로, 1차대전의 총 사망자 수인 1천5백만명의 2배에 해당하는 3천만명이 사망하였다.

『베를린 함락 1945』는 독소전 그리고 그 중 가장 방대했던 최후의 전투, 1945년 4월 16일부터 5월 2일까지 2주간 250만 명의 소련군이 100만 명의 독일군을 향해 진격하여 거룩한 아돌프 히틀러의 '천년 왕국'의 막을 내리게 했던 베를린 함락에 대한 역사서다. 요한계시록 속 천년 제국의 수도로서 성화되었던 베를린은 지상에서 가장 잔인한 지옥이 되었다.

그 유명한 "하일 히틀러(Heil Hitler)!"라는 구호이자 인사말은 "구세주/치유자 히틀러"라는 뜻이다. 당시 히틀러에게 바쳐졌던 기도는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을 전용한 것으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아돌프 히틀러, 당신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시니,
당신의 이름은 적들을 두려워 떨게 하나이다.
당신의 왕국이 임하옵시고,
당신의 뜻만이 땅 위에서 법칙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며,
또한 우리 삶을 투신하여 복종하길 원하옵는
당신 지도자의 지위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소서.
구세주 히틀러여 당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언약하나이다.”

2016년 독일에 체류하던 정유라가 체포되기 전, 수상함을 느끼고 빼곡하게 일지를 작성했거나 아동학대 등으로 여러 차례 신고를 해왔던 이웃 주민들의 일화가 보도되자 한국 네티즌들은 '인간 cctv'의 나라라며 흥미로워했다. 독일 노인들은 하루종일 창 밖을 바라보며 서로를 감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차대전을 겪었던 세대이기 때문에.

『베를린 함락 1945』에 의하면,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1945년의 베를린 시민들은 그러나 더 이상 게슈타포에게 고발당할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더 이상 "하일 히틀러!"라고 인사하지 않았고 가장 흔한 인사말은 "살아남아라!"가 되었다. 히틀러가 우리를 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폭격을 맞은 후에도 깨지지 않는 열차의 창문처럼 드문 것이 되었다. "거리에는 앞쪽이 무너져 내린 집들이 있었고, 그 집의 거실이나 침실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훤히 보였다." "낮에는 영국군이, 밤에는 미군이 너무 자주 공습하는 통에 베를린 사람들은 침대보다는 지하실과 방공호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느꼈다. 수면 부족은 억압된 히스테리와 운명론이 기이하게 뒤섞이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방공호Luftschutzraum’의 약어 LSR이 “빨리 러시아어를 배워LerntschnellRussisch”라면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종종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자살하다보니 당국은 아예 화장실을 폐쇄하기도 했다."

『베를린 함락 1945』를 읽는 내내 나는 그 처참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 어머니는 55년생이시고, 전쟁의 생존자들은 고작 두 세대 이전의 사람들이다. 2차대전은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희생자를 초래했다. 한 나라가 완전히 사라지는 규모의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의 삶에서 과연 전쟁이란 무엇인가. 끝난 적이 있을까. 끝날 수가 있을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60대 이상 인구가 표출하는 성향은 그 아래와 자주 완전히 단절된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콘크리트" 로만 보인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를 구하지도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부서지지 않는다. 그들이 겪었던 비극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려는 세력의 가장 단단한 지지자가 바로 그들이다. 전 생애를 다해 무언가를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무언가가 되곤 한다. 다시 생각한다. 과연 전쟁이란 무엇인가. 끝난 적이 있을까. 끝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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