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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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는 여러 차례 나누어 읽어야 했다. 한 번 읽을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책을 덮어도 오래도록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서, 책을 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떤 단어로 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안타까움으로도, 분노로도, 절망이나 좌절, 혹은 증오의 감정으로도 설명해내기 어려웠다. 그저 참담한 마음이 되어 읽어나갔다. 그대로 덮어버리는 것은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게 되어버린 이상,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꼈다.

 

<은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어릴 적 입양되어 폴란드에 살고 있는 .’ 한국으로부터 날아온 편지에는 자신의 입양 서류와 함께 친모의 검안서, 사망과 관련된 수사 요약 보고서, 그리고 복지시설의 입소 카드가 들어 있다. 오래전 사망한 그의 친모 은희와 알고 지내던 미연이 아우슈비츠로 향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만, 미연을 만나고도 스치듯 헤어져 결국 준이 한국으로 향한다. 내년 총선 전까지 형제복지원사건의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를 위해 그의 증언을 설득하는 병호와 자신의 기원으로 다가서는 ’, 그와 동행하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증언자 미연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캄캄한 진실로 나아간다.

 

<은희>1975년부터 1987년까지 벌어진 형제복지원사건을 다룬다. 거리의 부랑인들을 데려가 개조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형제복지원은 한국의 근현대사에 남은 참혹한 인권유린의 역사다. 사회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거리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무고하게 끌려간 그들은 형제복지원이라는 복지시설에서 존엄을 짓밟혔다. 철저한 군대식 구조가 자리 잡은 폐쇄 공간에서 그들은 어떤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맞는 공포와 맞지 않으려는 불안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수감자들이었고, 권력을 얻기 위해 서로를 물고 뜯어야 하는 지옥 속 피해자들이었다. 복지원장의 구속 이후에도 수감자들은 시설에서 곧바로 나오지 못했고, 가까스로 탈출한다 해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의 폭력은 오래도록 남아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남아있다.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적나라했다. 책 앞부분에 경고문이라도 붙여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정도였다.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은 항상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것일까.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읽기에 어느 정도의 수위가 반영되어야 할 것인지 고민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폭력과 고통에 외면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가슴 속이 참혹해지는 걸 견디는 시간 사이에서 나는 한 단어를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애도.’ 애도는 무엇일까. 존엄이 짓밟히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야 했던 수천 명의 사람들과, 그곳에서 억울하게 죽은 500여 명의 사람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감히 그럴 수 있다면, 역사를 기억하는 것.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 피해자들의 쉬는 숨이 오늘은 한결 더 편해지길 기도하는 것. 인간의 존엄과 권리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인간되기를 고민하는 것. 인간을 생각하는 것. ‘은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내게 <은희>를 읽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대신 잊지 못할 기억을 지키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절삭된 삶을 가져본 적 없었을 테니까. 집이 한번 무너져본 이들은 어느 날 또 다시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어느 날, 어떤 이유도 없이, 또 다시 감금되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미연을 따라다녔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창문을 모두 잠갔고, 텔레비전 속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서야 잠이 들었다. 미연은 공포를 딛고서 비틀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량품 같은 삶, 정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삶이 뭔지 미연은 알 것 같았다.” p.79

         

가방에서 과도를 꺼내 손에 쥐었지만 누구를 찔러야 할지 막막했다. 국가, 사법부, 원장, 소대장, 조장, 아니면 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거지를 치워 깨끗한 사회를 조성하려 했던 보통 사람들, 1년 남짓 소대장 아래서 다른 수용자를 감시하고 밀고한 자신. 그 누구를 죽여야 할까.” p.101

    

모든 사망자는 죽음의 원인이 밝혀진 채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쩌다 시작된 생일지라도 타살과 그렇지 않은 죽음을 구분하여 사회적 장례를 치르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고 여겼다. 하늘이 사람의 시작을 내어놓는다면, 사람이 그 끝을 치러야 한다고,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고.”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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