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예수 - 설하 총서 1
반상순 지음 / 미스바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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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벽, 빗방울 산란하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어 상념을 뒤척이고 있노라니 불현듯 '물구나무 예수'의 심상이 물 오른 기억을 일으켜 세운다. 이젠 제법 손때가 묻어 있는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부시도록 푸른 설하 산맥 아래 잔잔히 피어난 한 무리의 설화가 또 다른 몸짓으로 내 마음을 흔든다.

'미래는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시간이다.
이 순수한 시간이 인간의 빛깔을 띠고 과거로 지나갈 때
순응했던 시간들은 변질되어 과거에 머무나
저항했던 시간들은 다음 세대에 끊임없는 미래로 다가온다.
순수한 시간은 결코 과거의 웅덩이에 빠지지 않는다.'

영원한 시간의 궁전 앞에 서서 순수로 아로새긴 비밀 열쇠를 미래 자물쇠에 집어넣는 순간의 떨림이 바로 이런 것일까. 낯선 듯하면서도 경이롭고, 과학적인 듯하면서도 철학적이며, 철학적인 듯한가 하면 시적이고, 시각적인 듯하면서도 청각적인 순수의 노래는 낮잠에서 깨어난 어느 저녁 미지의 세계에 와 있는 듯 어린 영혼에 비쳐들던 한 다발의 햇살처럼 신비로운 명상으로 나를 이끈다. 설하, 그가 만난 예수를 위하여 자신을 허비하는 일에 나섰듯이 나 또한 물구나무 예수로부터 출발한 빛이 나를 찾아내어 자신을 허비하는 일에 나서게 되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그는 색의 혼합으로 화려해진 다원주의의 캔버스 위에 순수라는 절대주의의 빛을 내려놓는다. 이 시대적 역행은 처음부터 승산의 기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무모한 저항인지도 모른다. 순수라는 말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의도적으로 잊혀지고 외면당해온 말인가. 하지만 난 아직도 지구상에 순수라는 말이 존재하고 있다는 진실에 감사한다. 이 순수와의 조우로 인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내가 돌아갈 고향의 주소가 어디인지를 재확인하게 되었기에 분명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도 고향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리란 믿음을 굳히면서.

상대주의의 담론이 넘실대는 물결을 거슬러 절대주의에 입문하는 이 순진무구한 발상은 누가 봐도 단절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더구나 담금질의 외로움을, 그리움을 침묵으로 견뎌내는 일은 영혼의 불사름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듯 싶다. 하지만 그는 옹근 침묵을 견뎌낼 희망 하나를 찾아낸다.

'뉴턴은 절대공간을 상대적 공간의 근원이며 기준이라 했다
뉴턴의 과학이 빛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라도
절대가 없으면 상대가 없다는 이 말은 여전히 빛나는 것이다.'

상대성이 온 우주를 지배하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절대자가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고무적인 위안인가. 그는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인간이 존중하며 가까이 사귀어야 할 아름다움은 자연이라고, 깊숙한 관조의 눈빛과 체험을 버무린 목소리로 힘 주어 대답한다. 그리고 자연(nature)이 인간을 그토록 유혹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득한다. 인간의 쉼과 자유와 평안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의 순수는 제4세계로 확장된다. 가시광선으로 보는 눈이 닫힌 뒤에 보이는 세계는 우주만큼이나 넓은 세계인 것이다.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크기만큼 우리 앞에 열리며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복감도 우리 앞에 열린 우주의 크기만큼 확대될 것이다. 세상은 떨린 가슴으로 서정을 읊조리는 사람들에 의하여 순화되며 생명을 뿜어왔다는 그의 조용하면서도 간절한 절규가 절절이 배어 있는 물구나무 연가는 물구나무 예수 옆에 나란히 서서 지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옥합을 깨드리고 있다.

물구나무 예수로부터 직진해 온 빛이 마침내 나를 찾아냈는가 보다. 논리를 뛰어넘는 그의 뜨거운 가슴의 소리가 농축된 감동이 되어 심금을 한줄 한줄 울려온다. 이 떨림이 더 많은 이의 영혼 속에서 절묘한 선율로 살아나게 되기를 열망하며 나는 30권의 물구나무 예수를 마음 속에 주문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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