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 우리가 교육에 대해 꿈꿨던 모든 것
살만 칸 지음, 김희경.김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의 기억은 어떠했는가 묻는다면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말 그대로 장밋빛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정점을 찍었을 수도 있고, 너무나도 끔찍하여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흑역사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개인적인 감상은 후자에 가깝다.) 그러나 공부는 어떠했는가를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의견이 하나로 모일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우리나라는 교육열 하면 둘째가기 서러워 할 정도이자 최근에 비율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절대적인 인생의 갈림길, 수능이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절의 수험생활을 돌이켜보면 몸서리 한 번 쯤 안 쳐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물론 일부 아웃라이어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좋지 않은 인식을 품고 사는 것일까. 답은 생각보다 명료하다. 그것이 우리를 강압적으로 움켜쥐고 누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조금 빠르면 중학교, 아니 요즘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이 작용한다. 그나마 예전에는 공부하면 배우자의 얼굴이 바뀐다, 좋은 대학가면 성공한다 등의 미끼(?)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지금은 아예 붉은 여왕의 역설이다. 뒤처지는 놈은 죽는다. 인간적인 면모는 고사하고 학생의 삶은 더 팍팍해져가고 있다. 비단 학생 뿐 아닐 것이다. 대학교 와서도 스펙을 쌓기 위한 학점과 봉사를 해야 하고 심지어 이색적인 경험을 쌓는답시고 창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무한의 경쟁체제에도 불구하고 그리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지 못한 듯하다. 중고등학생들의 수업포기, 사교육 과열, 각종 입학비리와 관청에도 잠입하시는 닌자의 후예도 나타나신다. 삼엄한 경쟁의 정글을 뛰어넘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왜 부정적인 경향이 지속되는 것일까? 답 역시 짐작하고 있다. 교육이 문제다.

사실 우리는 예전부터 교육이 문제임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수없이 오래전부터 창의성 개발이다 인성 개발이다 하며 주입식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해왔다. 동향을 알지는 못하지만 교육학계에서는 더 오래 전부터 이런 논의가 계속해서 이어졌을 것이다.(이런 내용은 책에서도 간간히 언급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내린 결론은 그다지 좋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창의성 개발을 위한 교육도, 인성 개발을 위한 체험학습도, 그 외 이루어진 교육 개선안들 모두 말이다. 심지어 정부에서 매번 교육개혁이라 하며 정책을 변경할 때에는 아예 역효과만 불러 일으켰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가중되었고, 당연히 이런 행태에 크게 분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네 학교는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래 교육의 틀이 변한 적은 없다. 반 백년이 훌쩍 넘는 그 시간동안 학생들은 언제나 같은 체제 속에서 교육을 받았다.

저자인 살만 칸은 이제 그런 틀 자체를 아예 바꿔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교육방식은 이른바 국가에서 특정한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는 국민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체제는 1900년대 독일 제국, 더욱 더 근원적으로는 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다. 군대가 거느린 국가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군사적 규율과 체계가 깊숙이 박힌 프로이센 교육은 교실 하나에 교사 한 명, 그리고 다수의 학생들이 수업을 묵묵히 듣고, 다음 수업으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분명히 중산층의 발흥과 더불어 당시에는 새롭고 효율적인 혁신이었다. 하지만 모든 수업은 시수에 맞춰져 있고, 교사들의 지식이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었을 뿐이며, 이마저도 오롯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이는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는데 필요한 토대의 부실을 초래하고, 결국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탈락하고 만다. 시험은 순간의 이해도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학생이 이를 완전히 이해했는가 조차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채 서열을 구분지어 버린다. 특히 칼처럼 자르듯 학생들을 분리하는 것은 일말의 갱생 여지를 없애버림으로써 수많은 가능성과 혁신을 배제하였고, 능동적이고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런 혼란과 피드백의 부재 등은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도록 부추겼고, 점차 수동적이고 타성에 젖어가는 사람들을 양성하는데 그칠 뿐이었다.

이런 방식들이 예전에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위에서 말했듯이 처음에 나왔던 이것은 혁신의 일부였다. 교육의 대중화와 균일화, 제도화로 인해 식자층이 크게 늘었고, 이는 산업사회에서 각종 동력원으로 작용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시민의 힘도 늘어났고, 경제영역 뿐 아니라 정치영역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이어가는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고 있다.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곧 도래할 것이다. 앞으로의 우리들은 이전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익혀야 하며 더 많은 개념들을 실상황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위처럼 사람의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환경에서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해본다면 긍정적 답변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교육체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타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계속되어 온 교육 관습으로 인해 우리가 타성에 젖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그간 교육에서 이루어진 체제가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업시수는 임의로 정해진 측면이 크고, 나이별로 구분지어 학년을 만들어둔 것은 짐짓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역시 아니다. 또래라 할지라도 태어난 시기에 따라 발달이 다를 수 있고, 설령 생일이 같다 할지라도 배움의 속도와 방식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한, 학년을 갈라두어 서로 다른 나이대의 사람들과 학습에서 소통할 길을 막고, 서로 책임의식을 키울 기회 역시 박탈한다. 상호작용 부족과 고립은 결국 부정적인 영향을 낳고 만다. 또한 우리는 교사 대비 학생 수에 관점을 두었지만 그것이 제일 중요한 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왜 한 교실에 꼭 한 명의 교사만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본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내어주는 숙제는 왜 그들을 옥죄는가. 왜 진정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생각을 하지 않고 양적인 면에만 집착하는지 등등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받아온, 그리고 앞으로의 사람들이 받을 학교체제에 어떠한 절대적 당위성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우리가 이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어졌고, 굳이 바꿔야 할 필요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크다. 하지만 명백히 이 체제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변화할 필요가 있다면 변화해야함을 직시해야한다.

그럼 이제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당연히 위와 같은 결점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우선 학생들은 자신이 배우는 내용에 대해 빠짐없이 소상히 알아야 한다. 어떠한 토대도 부실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완전학습이라 소개하는 이 항목은 얼핏 이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지만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개념들에 손실이 없어야 하며,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둔 이해는 탄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말이다. 굳이 이론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사례도 계속해서 보여준다. 자신이 운영하는 칸 아카데미에서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한 결과들을 말이다. 그에 따르면 학생들이 완전학습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으며, 의외로 공부에 지장을 줄 정도로 오랜 시간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개념들을 적당히 건너뛴 사람들이 문제를 겪었다.

다른 하나는 교과목들의 연계 강화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각 과목들을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가르쳤다. 국어, 물리, 역사, 외국어, 수학, 정치 등 말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론이 홀로 선 등대처럼 보였고, 우리는 이 모든 개념들을 이해하기에 벅차 결국 달달 외워 시험을 치러야 했던 경험들을 누구든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낭비이자 허구다. 모든 과목들은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도 역사에 따라 변화했고, 물리와 수학은 밀접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화학과 물리 역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 그리고 더욱 더 나아가 날씨와 역사의 관계는 지구과학 역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기억은 서로 연관 지을 때 더욱 강해지며, 응용력 역시 이런 곳에서 싹튼다는 것을 생각하면 왜 지금처럼 분절적인 수업을 하는지 다시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제안은 능동적인 교실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배움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획일적이고,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더욱 연결되어 있고, 더욱 개성적인 교실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해속도에 따라 배우고, 팀 프로젝트를 통해 개념을 적용하고 활용하며, 다수의 교사들에게서 피드백을 얻고 유대와 신뢰를 키운다. 학년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상이한 배움의 정도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공유하며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교실은 그저 불러주는 강의를 묵묵히 듣고 긴 시간에 지쳐 쓰러지는 공간이 아닌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묻고, 시험하며, 체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지금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교육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마지막의 제안은 이런 방식이 굳이 12년 교육체제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연령대, 전세계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응당 그래야 한다. 상술한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서 우리는 그저 느긋이 앉아있을 수 없다.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한다. 그것들을 적용해야한다. 그것들을 가지고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개 배움이 멈춘 후의 우리는 이런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회사에서도 영어나 승진을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 배움에는 멈춤이 없어야 한다.

그럼 위에 있는 것들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상적인 목표이기는 하나 과연 실현이 가능한 것인가 할 것이다. 저자는 가능하다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가 세운 칸 아카데미는 그저 동영상 스트리밍을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혁신들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에만 한정하지 않고 교육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갖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물론 완전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이것들을 점차 가능하게 해주고 있으며,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개선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켄타로 토야마는 자신의 저서 기술중독사회에서 어떤 문제의 해결이 하나의 패키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고자 하는 당사자의 의도, 안목, 자기절제에 의해 핵심이 달려있다고 말한다. 칸 아카데미라는 기술 자체만으로는 교육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발기인인 살만 칸과 그가 이끄는 조직은 교육을 긍정적으로 이끌고자 하는 좋은 의도, 교육의 문제를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지에 대한 적절한 안목, 그리고 절대 다른 길(예를 들어 상업화나 특정 단체 입맛에 맞는 어용화라던가)로 새지 않겠다는 굳은 자기절제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기술이 아닌 새로운 길의 제시라는 것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그에게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아마도 불확실성에 대한 나의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일 어떤 학교에 가야 할 것인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레바논은 중동전쟁에 참가한 전차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서 갖가지 사건을 겪으며 정신적 혼란과 갖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서로 충돌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인 모습과 더불어 무미건조해져 가는 모습은 강렬한 대비로 나타난다.

사실 이런 모습은 반전을 주제로 하는 여러 종류의 컨텐츠에 나타난다. 풀 메탈 재킷에서는 훈련소에서 겪는 비인간적인 일상과 거기서 나오는 낙오자를 통하여, 전쟁터에서는 쓰러져 가는 분대원들과 위에서 내려오는 무언의 압박을 마주치며, 주인공은 점차 시니컬해지고, 무감각해져 간다.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허트로커 역시 마찬가지 광경을 보여준다.

이제 이런 모습은 의외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을 수 있다. 아직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를 짙게 깔고 가는 컨텐츠도 부지기수긴 하지만 그런 곳에서 조차 이런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 또한 이런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영화 고지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적어도 전쟁관련 영화를 몇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다들 한번쯤은 이런 전쟁에 나타나는 인간성의 파괴를 접해보지 않을 수 없다.

레마르크는 1차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이 책을 썼고, 즉각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반전의 아이콘으로서 떠오른 것이다. 그 덕에 후일 나치당이 집권했을 때, 결국 스위스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집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막 20대에 접어든 청년이다. 그러나 풋풋한 모습은 없다. 군대의 생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참호에서 뒹굴고 간이로 만든 용변기에 앉아 카드 게임을 하며, 조금이라도 더 풍족한 식량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잠자리를 찾는 것은 일상을 이어가지만 그래도 평시의 생활과는 이질적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이런 모습은 점점 커진다. 쏟아져 내리는 포탄, 엄폐부에서, 여의치 않으면 포탄 구덩이나 심지어 공동묘지에 있는 누군가의 자리에서 까지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의 모습까지 점차 파먹으며 끝끝내 그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이야기하는 오로지 삶이라는 부분만이 남았다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보았던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남은 삶조차 불완전한 모습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인공이 속한 청년층이 그 직접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참상은 극대화된다.

레마르크 이전에도 전쟁의 참상과 반전을 이야기한 책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있긴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드나 전쟁과 평화 역시 이런 면을 반영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 이전에도 더 이전에도 평화를 이야기하며 반전의식을 가진 주장과 저서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파괴해가는지 보여준 책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술은 감성적인 면보다 담담한 어조가 더 많다. 하지만 그것은 그 때의 시간들이 메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곳에서 꿈틀거리고 저지르는 비명은 이전의 이야기들보다 더욱 사실적이고 그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다. 생기를 잃은 삶을 쪼개고 낱낱이 늘어놓는다. 거기서 보이는 결핍은 우리에게 반대로 돌아서라며 외치고 있다. 그럼 이제 돌아보자. 우리는 메마른 시간을 살고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병 - 장기 쇠퇴의 다이내믹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5
가네코 마사루.고다마 다쓰히코 지음, 김준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이 장기쇠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석한 책입니다....만


분명히 일본의 전체적인 사회 이야기나 경제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비유를 하기 위해 의학부문 이야기를 끼워넣었습니다.

물론 다른 부문을 통한 비유나 새로운 관찰시각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는 전혀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네요.

경제학자가 써놓은 파트만 볼만 합니다.

의학부문은 일반인을들 위해 딱히 흥미가 있게 써두지도 않았고

일본사회의 데카당스를 짚어내는데 크게 관련있게 엮지도 못했습니다.


일본 경제 관련에서는 차라리 LG경제연구원에서 나온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저서는 듣지 못했어도 총균쇠만큼은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법한 책이다.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야생조류학 연구차 뉴기니에 갔던 경험을 계기로 본격적인 인류학을 연구하고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인류와 문명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 인해 옛 문명이 무너지고 말았는가, 옛 사회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등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그동안 다이아몬드 교수가 밝혀왔던 입장과 논의를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물론 그 두꺼운 책들을 200여 페이지 되는 분량에 모두 담으려니 개괄적이고 최대한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하는데 그친다는 점이 있으나 다이아몬드 교수의 연구에 입문하는 책으로서는 손색이 없다.

혹시나 총균쇠나 그 외 다이아몬드의 저작을 보고 싶으나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 이 책을 먼저 보길 권한다. 또한 이 책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매끄럽지 못한 번역문장이 가끔씩 눈에 띄며, 오탈자가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2판에서는 이런 점이 개선되어 나오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속 5센티미터 one more side - NT Novel
카노우 아라타 지음, 박계현 옮김, 신카이 마코토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재출간 좀 해주세요 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