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나의 병사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27
하비에르 세르카스 지음, 김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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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에 나왔다.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삼아 당시 큰 주목을 이끌었다. 수필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이 소설은 팔랑헤 당의 거물이었던 산체스 마사스가 내전 중에 겪은 일을 시초로 한다. 처형의 위기에 맞닥뜨린 그는 이름 모를 병사의 행동과 카탈루냐 패잔병들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이 이야기를 자신의 기록에, 지인들에게 남긴다.

산체스 마사스의 당시 상황을 복원하려고 조각조각 흩어진 자료들을 맞추는 과정과 이를 토대로 소설을 만드는 과정, 찾아도 찾아지지 않던 무명용사를 정말 우연찮게 찾아가는 과정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망각협정과 이행기 속 잊어버린 어두운 과거를 들추어낸다.

산체스 마사스는 팔랑헤당 창립멤버로써 당시 불씨로만 지펴진 파시즘의 선봉이었다. 그는 탁월한 시인이자 소설가, 선동가로 팔랑헤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깊은 확신과 낭만으로 역설한다. 탄탄한 정신, 옛 도덕과 훌륭한 질서의 수호자들이 만드는 유토피아를 상상한 그는 수많은 이론가들이 그러하듯 생각과 다른 현실의 굴곡에 마주한다. 저자는 기나긴 시간과 사건들의 끝에 마사스가 결국 박살나버린 자신의 이상에 남긴 한줌의 회한을 보여주며 프랑코 시대의 이상과 가치가 허상임을 보여준다.

산체스 마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난 뒤 결코 찾지 못한 이름없는 병사는 칠레 출신 작가에 의해 실마리를 연다. 프랑스에 아무도 모르게 잊혀지는 그를 찾아내면서 마침내 잃어버린 역사의 마지막 면을 완성한다. 특별한 이상을 가지지도 신화나 영웅담처럼 거대한 사명을 띄지도 않아 묻힌 그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영웅이었다.

저자는 영웅담을 들춰내어 세월에 묻힌 진짜 주인공을 드러내고 동시에 이러한 과거를 모두 묻어버리기로 한 망각협정과 이행기에 비판을 재기한다. 독일의 역사학자가 말한 "최후에 문명을 구해내는 소수의 병사들", 즉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살라미나의 병사들은 마사스가 말한 자신들 상상 속 이상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다른 곳에서 죽어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 제목이 원래 산체스 마사스가 쓰려던 책의 제목이었음을 밝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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