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찾다 지리산 둘레길 - 걸으면서 마주친 따뜻한 세상
김천수 지음 / 밥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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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교도관 선배님이신 김천수 작가님이 쓰신 책이다.

선배님은 30여 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느끼신 점을 글로 남겼다.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추석날 선배님과 안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에서 평소와 다른 반가움을 느꼈다. 그리곤 책을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무슨 책이냐 물으니 일단 받아 보라고 하셨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며칠이 지난 퇴근길 현관문 앞에는 작은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선배님과의 전화 통화가 떠올랐고 그게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셀레는 마음에 포장을 뜯었다.

책 표지에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많은 봉우리들과 노란 평야가 돋보이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 바로 위 '길에서 길은 찾다 지리산 둘레길'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제목으로 보아 사진 속 산은 지리산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길에서 길을 찾다'라는 문구가 크게 다가왔다.

'길'이라는 단어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단순히 우리가 걷는 길부터 시작해 살아가는 인생도 길이라고 표현한다.

선배님은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어떤 인생에 대해 느끼셨을지 책을 읽기 전부터 궁금해졌다.

책은 보기보다 묵직했다. 첫 장을 넘겼다. 두꺼운 재질의 종이가 느껴졌다. 휘리릭 넘기자 글보다 컬러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딱 봐도 공을 많이 들인 책 같았다.

서문에 지리산 둘레길을 트레킹 하며 든 저자의 소감이 있었고, 목차를 넘기자 지리산 둘레길의 약도와 걸으면서 이야기가 하루 일정으로 적혀있었다.

저자는 젊어서부터 산을 좋아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정상까지의 여정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산 둘레를 도는 일정이었다. 책을 읽기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을 가면서 왜 정상이 아니라 주변을 돌았을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20여 일 이상을 말이다.'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지리산 둘레길 전체 약도가 나오고 1일 차가 시작 되었다. 지리산이라 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어렸을 적 흔하게 보았던 뒷 동네 마을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목포에서 배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지만 산으로 둘러 싸인 농촌 같은 섬 마을이었다. 그 유년 시절 어렴풋한 추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22일간의 여정에서 작가는 지리산 둘레길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눈이 내려 하얗게 된 벌판에 뒤 따라올 누군가에게 발자국을 남기듯 '이 책은 지리산 둘레길의 가이드 북입니다' 할 정도였다.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둘레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산 정상을 향하는 게 아니라 주변을 돌다 보니 민가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겠지만 작가는 그들과의 대화를 지리산 보다 더 사랑하는 듯 보였다. 대부분이 그 마을에서 오래 거주하신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어르신들과 같이 찍은 사진과 그들의 이름까지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몇 마디 나눈 이야기를 적은 게 아니라 지리산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과 고단했던 삶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아련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애절한 한 권의 소설보다 더 구슬펐기 때문이었다.

불현듯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낯선 등산객의 말 한마디에 반가움이 사무쳐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를 두 손 넘치게 따주며 정을 나누던 그들의 모습에서 외로워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는 산 그림자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다시금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길에서 길을 찾다' 작가는 왜 산의 정상이 아닌 둘레길을 걷게 되었는지 짐작이 됐다. 지리산과 함께 살아온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에게 산은 단순히 나무가 우거진 곳이 아니었다. 어머니 같은 품으로 자신과 자식들을 키워주는 삶의 터전이자 생존의 공간이었다. 저자는 그 인생의 길을 찾기 위해 지리산 둘레길로 신발끈을 조이며 떠났는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도 지리산은 아픔의 산이다. 한국 전쟁에서 빨치산의 본거지였다. 이념에 의해서보다 배고픔과 억압에 의해 지리산 골짜기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빨치산이 아니더라도 산그림자가 내리는 마을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두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곳이 지리산이다.

지리산과 둘레길은 그 비련 한 고통의 인생과 삶을 담고 있는 장소다.

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 읽었다.

'길에서 길을 찾다 지리산 둘레길'

살아가면서 인생의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 길은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따뜻한 세상 속 따뜻한 마음이지 않을까 한다.

오늘 선배님으로부터 받은 귀한 한 권의 책 속에서 내 인생의 길을 찾은 것 같아 흐뭇하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 길을 찾아보고 싶다.

[길에서 길을 찾다, 지리산 둘레길]이라는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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