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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기대다 ㅣ 푸른사상 시선 151
안준철 지음 / 푸른사상 / 2021년 12월
평점 :
안준철 시인의 시집 “나무에 기대다”를 읽고
안준철 시인과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반항, 그리고 도전을 함께 꿈꾸기도 했던 죽마고우이다.
헌데, 한때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는 성장하면서 각자 서로 다른 삶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되었고, 디지털 시대인 지금과 달리 핸드폰도 없어 연락이 단절되었고, 오랫동안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어느날, 우연히 TV 시인의 산책 프로그램에서 안준철 친구의 모습을 보고 너무도 반가워서 여러 수소문 끝에 45년만에 재회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시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고, 내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야라고 체념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수필, 소설 등이 시집과 함께 있으면 시집에는 손이 가지 않았던 것도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도 오랜만에 만나게 된 친구 안준철 시인으로부터 그의 시집 “나무에 기대다”를 선물 받고, 무심코 책 표지를 펼쳐 처음부터 한두 편의 시를 읽어보기 시작하였던 것이 점점 나도 모르게 시구에 몰입되어 결국 시집 한 권을 거의 다 읽는 나의 생애 가장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물론, 안준철 시인의 시에서 전해오는 읽기 편하고 오묘함도 있었지만, 시구의 마디마디에서 나의 삶이 재조명되고, 새롭게 느껴지는 반성과 깨달음, 희망과 의욕 등은 시집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나에게 이런 시적 감성이 일찍이 내재되어 있었단 말인가? 아마도 나는 그 순간 안준철 시인의 시상이 나의 정신을 홀려버린 거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맞아, 그의 시는 그랬다.
그의 시집에서 그는 사람의 희노애락을 자연의 섭리에 가장 적절하게 조화해내는 연금술사와 같았다. 그의 시는 서사적으로 표현하여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깊이는 무한한 내용이 함축된 곧 용광로와 같았다.
시인 안준철의 시를 잠시 음미해보자.
“고장난 렌즈”
자동 초점이 안 되는 렌즈를
수리점에 맡기지 않고 그냥 쓰고 있다.
자동기능이 살아 있을 때는
저절로 쉽게 초점이 잡히던 것이
한참을 쪼그려 앉아 애를 써야 하니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여간 불편하지 않은 것이
은근히 재밌고 즐거운 거다.
애면글면하다가 비로소 선명해지는 순간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아, 저토록 아리따운 생명을
너무도 쉽게 만났다는 반성도 들면서
라고, 시인은 자신에게, 아니 지금의 모두에게 그 심각성을 하나하나 꼬집어 주고 있다.
현대 디지털 문화에 싸여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에 중독되어 서서히 정서가 파괴되고, 인간관계마저 흔들려 수많은 갈등과 번민으로 삶에서 놓치고 있는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이전에 우리가 삶에서 겪었던 아날로그 시절의 순수함과 짜릿한 기쁨, 그 가운데에서 느껴지는 행복했던 순간도 가끔은 뒤돌아보는 여유를 갖어 보자고 위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시집 갈피를 접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각에 젖어 본다. 몇 해 전에 나는 수십 개의 전화번호도 암기해서 즉시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는 되었는데, 지금은 서류를 작성하다가 아내의 전화번호를 적으려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핸드폰을 꺼내어 검색해 봐야 했던 나도 역시 디지털 현대병에 폭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때, 내가 미국에 체류할 때, 직접 차를 운전하여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뉴욕 맨하탄까지 무려 18시간을 직접 운전을 하고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의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 나는 직접 지도를 검색하여 도로를 읽으면서 찾아갔고,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안준철 시인의 표현대로 애면글면하면서 찾아갔지만, 후에 주위에서의 경악과 칭찬, 내 자신의 놀라움에 짜릿한 맛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비게이션의 여자목소리 안내대로만 가면 되기에 그런 희열은 있을 수도 없고, 의도적으로 지도를 사서 펼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여, 시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가끔, 정말 가끔 한번씩은 아날로그의 삶도 그리워 해보자고, 이를 통하여 삶의 새로운 행복과 활력도 느껴보자고 진심으로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월이와 자전거”
오늘은 슬슬 걸어서
동네 산이나 다녀오자고 정한 마음이
베란다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보자
무너지고 만다.
자전거를 볼 때마다
장모님 댁 백구 이월이가 생각난다.
이월이는 말은 못해도 꼬리라도 흔들 줄 아는데
자전거는 그러지도 못한다.
자전거를 끌고 동네 앞산을 오르기로 한다.
저가파른 계단을 끙끙대며 오르다가
숲속, 분홍 병꽃을 보자
슬그머니 자전거를 놓아버린다.
한참을 꽃에 홀려 놀다가
자빠뜨린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며
손잡이를 한 번 더 꼭 쥐어준다.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다고
두 번이나 사과를 하고
그제야 나란히 숲길을 걷는다.
또한, 안준철 시인은 사소한 삶에서 깊은 반성과 성찰을 갖기도 한다.
사람은 항상 가장 가까운 곁에서 나를 위해 온몸으로 희생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가끔씩 그의 역할과 감사함을 잊기도 하고, 홀대하는 우범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잠시 눈에 띄는 새로움, 황홀함에 눈이 돌아 생각과 행동으로 추태를 자행하는 우매함을 노출하기도 한다. 하여, 시인 안준철은 이러한 인간의 심성을 자신의 애마 자전거에 비유하여 꼬집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일갈한다.
꼬리 한 번 흔들어준 백구 이월이와 비교를 하고, 숲속에 핀 병꽃에 마음을 홀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자신의 나들이에 가장 큰 수고를 했던 애마 자전거를 홀대하고 내팽개친 자신의 추태를 성찰하고 채찍질하면서, 순간 병꽃에 홀렸던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자전거에 두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죄를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자전거의 손잡이를 꼭 쥐어주고, 이제부터 새로운 역동적 동반이 시작된다.
이는 진정 안준철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선한 양심고백이면서 그의 노련한 시적 감성을 자아내는 재능과 동시에 힘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이고 아량인 것이다.
나도 아내에 대한 나의 삶을 조용히 성찰해보는 여유를 가져 본다.
“두 가을길”
가을길을 걸었다.
길을 걷는 것은
내 안에 길을 하나 내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두 가을 길을 걸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무한한 길을 걷는다. 좁은 길, 넓은 길, 순탄한 길, 험난한 길, 예쁜 길, 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걷는다. 그리고 없다. 아무것도.
그러나 안준철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노래한다. 길을 걸을 때마다 내 안에, 내 마음에 길을 닦는다고, 예쁜 길도, 힘든 길도, 보람찬 길도 닦는다고 그는 말한다. 하루에 한 길만 걸어도 1년이면 365개의 길을 걷는데, 과연 마음속에는 몇 개의 길이 남아 있을까?
그 길은 깊이 성찰하는 사람만이 닦을 수 있는 길이요,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수만 번의 길을 걸어도 생각이 없으면 내 안에 단 한 길도 없다는 것을 그는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가을 길을 걸으라고, 꿈과 낭만과 희망이 가득한 가을 길을 함께 걷자고~
그리고 내 안에 그 가을 길을 내 보자고. 그러면 삶이 밝아지고 뜻이 생기고 희망이 보이고 의욕도 생겨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치유가 된다고.
요즘같이 코로나로 힘들어 낙오되는, 쓰러져 가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는 소리없이 외치고 또 외친다. “다 함께 손잡고 가을 길을 걷자고, 걸어 보자고~”
하여, 나는 이러한 안준철 시인의 외침에 응답하고자 손을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인정해주는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외침을 함께 들어보자고 머리를 곧게 세웠다. 그래서 안준철 시인의 사랑을, 권유를 함께 느껴보고 용기를 내어 보자고, 행복해지자고~
그래서 나는 안준철 시집(“나무에 기대어”)을 주문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졌다. 알게 된 알라딘 사이트에서 일단 30권을 주문하여 우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였다. 간단한 메모와 함께. “새롭고 감미로운 시의 세계에 함께 가보자고~”
역시 나의 결정이 옳았다. 지금까지 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지인들의 하나같은 반응은 “너무나 고맙다. 왜 지금까지 이렇게 맛깔나는 시의 매력을 모르고 살았을까? 앞으로 더 많은 시들과 접하면서 함께 수많은 감동으로 살아보겠노라고~”
또한, 하나같이 한마디 덧붙임의 말은, “혹시 안준철 시인이 대전에 오시면 꼭 식사를 함께할 기회 달라고~”
2021. 12. 햇볕이 아주 고마운 날.
글, 정 성 남 (안준철 시인 죽마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