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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기욤 뮈소의 전작을 좋아한다면 판타지한 전개 속에서 운명적 사랑과 때문에 희생하는 사랑, 더하여 주인공의 과거로부터의 깨달음과 성장. 어쩌면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욤 뮈소의 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엘리엇이다.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캄보디아에서 의료자원봉사를 하던 의사 엘리엇이 한 아이를 치료해주고 보답으로 부락의 촌장으로부터 황금색 알약을 얻게되면서 시작한다.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약은 실제로 타임워프를 일으키는 약으로 미래의 엘리엇은 약을 먹을 때마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시간여행을 하게되고 동시에 다시한번 일리나를 보고싶은 60대의 엘리엇과 수상한 남자를 의심하는 30대의 엘리엇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이를 통해 소설은 독자에게 친절하게 안내하지만 몇가지 반전을 주기도 하는데 예를들면 왜 엘리엇이 과거에 죽은 일리나를 살리고 싶은게 아니라 일리나를 만나고 싶기만 한지와 같은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엘리엇은 일리나의 죽음으로 반목하게 되나 결국 두 사람은 협상과 한 번의 실패 끝에 일리나의 원래의 운명으로부터 낚아채 그녀를 살리게된다.
그들의 마지막 만남 이후로 미래의 엘리엇은 사라지고 과거의 엘리엇의 시간만이 현재가 되어 흘러간다. 일리나를 살리기 위해 사랑과 우정을 포기한채 인생의 소명과 딸만을 붙잡은 채 살아가는 엘리엇, 한량 같았던 미래와 달리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매트, 떨어지는 잎과 같은 운명을 벗어나 올곧게 선 무성한 나무와 같은 삶을 이어가는 일리나. 그들의 삶은 엇갈린 채로 세 갈래의 가지로 나아간다. 달라진 삶 속에서 이전의 자신이 알려주었던 사건들을 겪으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윽고 타임워프 해왔던 자신과 같은 나이가 된 엘리엇은 결국은 그가 된 자신을 깨달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소설의 끝부분에서 장례식장에서 엘리엇이 남긴 편지를 본 매트가 마지막 황금색 약으로 과거의 그에게 경고를 하고 돌아온 미래에서 해변을 걷던 엘리엇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열아홉 소년 엘리엇은 열차사고를 당하지만 그 속에서 그의 삶의 가장 소중한 세 가지를 얻는다. 사랑과 우정과 인생의 소명. 그리고 그 중 두 가지를 잃고 살아가게 된다. 그가 일리나를 찾아가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앤지를 얻기위해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해야했던 죄책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자신이 다시 다가갔을때 운명이 또 다시 그녀를 잃게 만들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보다 클 것이다. 매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선택이 일으킨 거대한 바람에 휘말린 적이 있기에 또 다른 선택이 그들을 다른 선택으로 이끌 수 있기에 그는 그 자신의 가장 소중한 세 가지 중 우정과 사랑을 놓는다. 매트를 우연히 영화관에서 봐도 다가가지 않으며 일리나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있어도 뉴스에 나온 일리나를 보고 울지언정 그를 찾아가지 않는다.
다만, 그저, 오로지. "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
책을 다시 읽으며 엘리엇에 대해 보다 생각하게 된다. 그의 찬란한,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해 그들의 삶으로부터 스스로를 유리시킨채로 살아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의 삶을, 해안가를 걷는 그의 마음을. 이후 그들의 황혼에서 시간여행에 대해 공유하게된 세 사람이 마주했을 때의 마음 또한 상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