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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어땠어?
김민지 지음, 김남희 그림 / 계수나무 / 2025년 4월
평점 :

표지에 등장한 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책가방을 메고 입을 다부지게 다문 소년은 여기저기 얼룩이 묻는 티셔츠를 움켜쥐고 어디로 향하는 걸까? 도시에 저녁이 찾아올 즈음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얼룩이 묻는 티셔츠를 벗어서 세탁기에 넣으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가 옷을 벗어서 세탁기에 넣는 것이 아니라 '건이의 티셔츠가 돌아온다'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족들의 하루를 도닥거리는 세탁기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게 건이의 티셔츠가 제일 먼저 돌아오고 뒤이어 유치원에 다녀온 동생의 바지,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온 누나의 교복 셔츠, 하루 종일 앉을 틈 없이 바빴던 아빠의 양말이 돌아온다. 가족들이 벗어놓은 옷에는 얼룩이나 때가 묻어 있는데, 하루 동안 각자의 공간에서 겪은 이야기와 고충이 그대로 스며 있다. 피곤한 가족들이 잠들고 제일 먼저 일어난 세탁기는 이른 아침부터 가장 바쁘다. 밤새 보관된 가족들의 찌든 지난 하루를 말끔히 세탁하느라고 말이다. 세탁기 안에서 지난날 차곡차곡 쌓인 가족들의 불편한 기억과 감정,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내고 재충전하는 과정을 옷들이 세탁기 안에서 깨끗하게 세탁 되는 과정에 비유해 표현한 점이 인상 깊다. 세탁 과정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서 나의 묵은 감정들도 빨래처럼 깨끗하게 빨아져 뽀송뽀송하게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세탁기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다시 힘낼 수 있게 응원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가족들이 세탁기가 말끔히 빨아준 옷들을 정성스럽게 널고 말려서 개키는 모습에서 함께 휴식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림책 속 가족들도 이 과정에서 충분히 쉬고 새로운 오늘을 잘 살아낼 힘을 얻었겠지.
모처럼 내가 아이였던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그림책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럽게 그 시절 일상으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그 무렵 엄마와 보냈던 일상의 일들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귀가하는 가족들 속에 엄마는 왜 등장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어쩌면 엄마는 식구들의 고충을 다 들어주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맑게 치유 해주는 세탁기 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께 이야기 거리가 많은 아이였다. 저녁 노을이 세상을 물들이고 구수한 밥 짓는 냄새가 동네를 가득 채울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와 하루 동안 있었던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다. 저녁 준비로 바쁜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서 쫑알쫑알 별 이야기를 다 했었다. 그 시절 나에게 있어서 엄마는 최고의 솔로몬이었다. 친구랑 다퉜거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 친구와 화해할 용기도 생기고 망설이던 일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랬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퇴근하신 아빠의 고민도 들어주셨던 것 같다. 어쩌면 가족들이 늘 힘낼 수 있는 건 묵묵히 식구들을 챙기고 응원하는 엄마의 정성 덕분이지 않을까. 물론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는 현대사회인 만큼 엄마를 대신하는 다른 감사한 존재도 계실 거다. 어쩌면 세탁기는 서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가족 모두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에게 털어놓고 토닥 토닥 보듬는 과정 자체가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는 과정이니 말이다.
추억 속의 내가 그림책 ‘오늘 하루 어땠어?’를 읽었다면 곧바로 동시를 한 편 지었을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요술 세탁기’ 라는 제목으로 짓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 어땠어?’는 가족들이 함께 읽기 좋은 그림책이다. 서로의 오늘을 이야기 해보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소통의 기회가 될 듯하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 부모님 스스로 각자의 하루를 말끔히 정돈하는 시간도 될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가족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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