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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걸 안 후부터 세상이 두려웠다. 그리고 혼자 여행할 때의 무표정한 얼굴 속에 그 감정을 숨겨왔다. 스티븐 갤러웨이는 이를 두고 ‘첨탑 위에서 영혼을 벗어던졌다’고 표현했다. <상승>의 주인공, 집시 셜보 우르셔리는 집시가 아닌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부모님을 불태워 죽인 후로 셜보는 세상이 두려워졌다. 그러나 두려움은 고통스럽고 버거운 감정이기 때문에 그는 교회 첨탑에 올라 감정을 버리고 고통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고향 트란실바니아를 떠나 부다페스트에서 우연히 줄타기를 배운 셜보는 남들이 모두 두려움에 치를 떨 높이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묘기를 부려 최고의 줄타기곡예사가 되고, 유럽 전역을 떠도는 유랑극단에서 미국 최고의 서커스단으로 영입된다. 하지만 두려움의 부재는 불가능한 것인지라 공포는 아주 갑작스럽게 불특정한 대상으로부터 그를 찾아와 덮친다. 더욱이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나비의 환상이나 코끼리 같은 다른 대상으로 반사되어 느껴지는 공포를 셜보는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더 심각하게 반응한다. 그러던 중 엄청난 상실을 가져온 사고가 일어나고, 이 엄청난 고통이 마침내 어린 시절 셜보가 둘러친 갑옷을 뚫고 들어온다. 그리고 셜보는 깨닫는다. 영혼을 내던진 이후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았지만 그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게 아니었음을.
살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셜보는 이제껏 수없이 많은 위기와 사고를 겪으면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함께 줄타기를 했던 셜보의 가족들은 사고 때마다 다치고 상처입고 불행해했다. 하지만 셜보는 그 고통에 공감할 수도, 고통을 나눌 수도 없었다. 다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셜보는 깨닫는다. 인간은 깡통인형이 아니라 유리인형이다. 던지면 깨져야 한다. 다른 가족들은 ‘셜보는 줄 위에서만 살아 있다’고 했지만 심지어 그곳에서마저도 셜보는 살아 있었던 게 아니었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줄타기곡예사였던 셜보는 깨달음 이후 진정 용기 있는 줄타기곡예사가 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계속 나아가는 힘이다’라고 했던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에 맞서서 극복한다. 그리고 줄타기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셜보는 비로소 줄 위에서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