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 - 매일매일 소설 쓰고 앉아 있는 인생이라니
고연주 지음 / 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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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소설 쓰고 앉아 있는 인생이라니

 

내가 살아온 것이 아닌 내가 나를 데리고 살았다라고 말한다. 나는 누구이고, 나를 또 데리고 나는 누구인가. 글을 읽을 때는 모딜리아니 같았는데 만나보니 보테로 같은 사람,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크래커를 천천히 삼키면서 예민함을 견디는 매력적인 그녀의 넋두리가 담긴 에세이 <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를 통해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인생의 재미를 느껴보자.

 

인생은 뭔가 특별해야 할 것 같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기대가 되었고, 어른이 되면 대단한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달리 화려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사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이런 인생이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은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만 책에 있는 한 구절 한 구절 읽을 때마다 마음 한 켠에 수긍하고 있는 건 대체 무엇일까?

 


p.66

제발 내 스마트폰에 후각 감지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반경 1미터 이내로 술 냄새를 풍기면 비상! 우리 주인님이 술을 마셨다! , 이제 모든 글쓰기 기능을 자동으로 차단합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줬으면 좋겠다.

 

술을 먹고 난 상황을 쓴 저자의 구절이 매우 재밌다. 술김에 취해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머리보다 손이 더 빠르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했을 뿐인데. 당장 하루만 지나도 이불킥 할 상황은 인생 참 재밌게 살면서 또 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수긍하게 해준다.

 

p.77

나는 잠자리를 가리는 쪽이다. 이게 잠자리를 가린다고 콕 집어 또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이, 나는 이사도 잘 다니고 여행도 잘 다닌다. 어쩌면 남의 집에서만 잠들기가 힘든 것 같기도 하다. 값을 치르지 않은 남의 집. 누구한테나 남의 집인 호텔 같은 데서는 잘도 자는 걸 보면 값을 치르는 남의 집에서만 잘 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읽다보면 유독 수긍할만한 것이 많다. 그냥 늘 그렇게 행동해왔던 것들이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자연스럽지 않고 이상하다. 인생을 정신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책은 위로와 더불어 재미를 전달해준다.

 

p.148

Cio, kion ni bezonas, estas amo.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 어느 민족의 언어도 아니고 어느 사상의 언어도 아닌 순수한 형태의 언어, 나는 언젠가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싶다. (중략)

근데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이거 어디 가능하려나.

 

책은 말 잘하고 좋아하는 저자의 넋두리 같은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한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말, 생각나는 말을 줄줄이 소세지처럼 엮은 듯한 느낌을 준다. 독백으로 가득찬 말들이 때론 정신없게도 보일 때도 있지만 약간 비스듬하게 살아가는 것이 꼭 나쁘지 않고 재밌을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p.167

마음이 많이 쓸수록 나는 내 생각과 내 생각이 싸우게도 하면서 내 생각이 내 생각을 의심하고 내가 나를 비꼬면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겠지. 둘 다 포기할 수가 없다.

 

저자는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예만한 시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그가 무라카미 류의 책을 읽었으면 수필이 아니라 소설을 썼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어쩌면 인생이 그런 하나하나의 점이 이어져 가는 것. <인생 참 재밌는데 또 살고 싶진 않음>에서 비스듬하지만 점들이 모여 만들어낸 재미있는 인생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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