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필드 안전가옥 쇼-트 25
박문영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상.


컬러 필드의 29번째 도시, 건진. 청년 창업 기금

880억 유치 성공!

건진시 외곽의 공사장에서도 잘 보이는 글자였다. 회사와 협력을 맺은 도시는 보통 이름 대신 컬러 필드로 불리곤 했기에 구름 위 건진이란 이름은 생경해 보였다. (8p)


결혼정보회사가 결혼 장사라면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매칭 서비스 기업 ‘컬러 필드’는 각 개인의 성향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컬러 뱅글’을 통해 사랑을 판다. 자유로운 사랑이라니 너무나도 달콤하고 모두가 꿈꾸던 그런 일인 것만 같다. 자신과 잘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컬러 뱅글로 확인하니 시간도 마음도 절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인공 ‘장류지’는 컬러 필드 직원이자 컬러 뱅글 사용자이지만 여느 컬러 뱅글러와 달리 자유로운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2년이나 지속된 ’백환‘과의 연애는 시시하고 지루하고 편안하다. 장류지와 백환은 높은 커플 만족도 예상수치인 88BG이지만 정말 데이터가 보여주는 만큼 잘 어울리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서로를 참아가며 살아가는 것 같다. 


백환과 자신의 매칭 성공률, 커플 만족도 예상 수치는 88BG로 다른 배색에 비해 꽤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안류지는 그 수치가 미심쩍다고 생각했다. 백환과 내가 잘 맞는 연인이었나. 어쩌면 우리는 통계에만 기댄 채 실제로 새어 나오는 불협화음은 못 들은 척해서 2년 넘게 사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90p)


컬러 뱅글을 찬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컬러 필드는 안타까운 사건에 조의를 표하며 가짜 컬러 뱅글임을 명시하는 광고를 통해 회사 이미지를 챙기고 직원인 장류지가 사망 사건을 조사하도록 명령한다. 


자유롭고 안전하고 깔끔한 사랑을 위해 만들어진 컬러뱅글은 사망 사건 그 속에 담긴 조야한 사랑과 엮이면서 쇠고랑 형태의 억압으로 서서히 본 모습을 드러낸다. 고작 250가지 색상으로 ‘나’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 인구 약 80억, 한국 인구 약 5,155만을 고작 250가지로 나눈 후 남과 나의 궁합을 완벽하게 점칠 수 있을까. 얼렁뚱땅. 대충. 그렇게 나를 끼워 넣고 남을 끼워 넣은 퍼즐이 과연 진짜일까. 

가짜 뱅글의 등장은 컬러 필드가 컬러 뱅글로 사람 장사, 사랑 장사를 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사랑의 복잡성을 단순하게 포장해서 상품으로 팔 수 있다면 그 만들어진 사랑을 비슷하게 만들어 파는 건 얼마나 쉬울까. 


있는 그대로, 당신의 색깔로 세상을 만나세요.

Everyone Loves You, You Love Everyone.

(11p)


회사 컬러 필드 슬로건은 모순적이다. 제한적인 색상으로 입체적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낼 수 있을까. 하물며 정해진 색상이 정말 나를 뜻하긴 할까. 데이터에 오류는 없을까. 수많은 의구심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덮쳐왔다. 


‘바른 만남 협회’ 시위자들이 모인 것이다…이들은 일대일이 아닌 관계의 비윤리성과 위험성을 지치지도 않고 고발해 왔다. 결혼 가정에 대한 지원과 혜택이 줄어든 현실에 대해서도 꾸준히 개탄했다. 컬러 필드 밖에 거주하면서 독점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 가운데에도 바른 만남 협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협회가 컬러 필드에 쏟는 관심이 집요하고 공격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61p)


그렇다고 나에게 ‘바른 만남 협회’가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는지 묻는다면 아니라는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올 것이다. 컬러 필드의 사랑과 바른 만남 협회의 결혼은 결국 아름답게 꾸며진 사기 장사일 뿐이다. 




*몽실북클럽을 통해 안전가옥 [컬러 필드]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