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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월
평점 :
채사장의 이전 책들보단 괜찮았다.
본인의 성장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다루었는데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솔직하게 서술했다. 나와 비슷한 몽상가지만 나보단 좀 더 중증인 프로몽상가로 보인다. (대학시절 몽골 여행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밤 하늘을 보고 나니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고 느꼈단다.) 그 증세가 심해 초반엔 현실세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책 후반으로 갈수록 세상 풍파에 적응하고 타협하는 법을 배우며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저자가 피자를 시켜먹는 장면이 자주 나와 친근하다.
책은 저자가 인생을 살다가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품으면 갑자기 특정 책의 저자인 옛 현인들(차라투스트라, 파드마삼바바, 마르크스 등)이 갑자기 옆에 뿅 하고 나타나서 저자와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저자는 대화를 통해 어느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어 만족하는 식으로 전개된다.(뿅 하고 나타났던 현인들은 다시 사라진다) 이런 기본 틀에 본인 인생 이야기를 덧붙이고 감성적인 퇴근길 묘사 따위를 곁들였다.
책에서 소개해주는 책들은 대부분 좋았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티벳 사자의 서」이다.
8세기 무렵의 티벳의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쓰인 이 책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죽은 자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고, 죽은 자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 했을 때에는 차선책으로써 그나마 더 나은 삶으로 환생할 수 있도록 사자를 인도하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죽어본 사람이 썼다고 할 정도로 구체적이라 인상깊다.
사자의 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후에 만나는 도깨비니 귀신이니 존재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니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삶은 하나이니 죽음 이후의 세계는 물론 삶의 세계 역시 내 마음의 환영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삶과 죽음 모두 본인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리를 돌려 말하는 것인데 이게 8세기에 적힌 저술이라는 것이 놀랍다.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
오늘날에도 사방에 넘치는 자기계발서들이 똑같이 말하는 주제이다. 사자의 서 한참 이전인 붓다 시대에도 "깨달음"을 통해 결국 마음먹기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니 인류는 고대부터 우리 자신 마음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자의 서에서는 죽은 자가 사후세계에서 만나는 존재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이 말을 한 것이었다. 죽음 이후의 공포조차 극복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마음의 힘이었다.
「티벳 사자의 서」 외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인류 최후의 지식이라는 우파니샤드도 흥미가 생겼는데, 마침 작년에 산 고전 세트에 끼어있길래 읽어보려고 한다.
이전 책들에서 좌편향된 모습을 보여주어 약간 불편했는데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성향이 어떤 이유로 형성되었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이런 글을 썼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저자 채사장에 대한 내 삐딱한 시선이 많이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