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마음 - 예쁜꼬마선충에게 배우는 생명의 인문학
김천아 외 지음 / 바다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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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마음이라는 감성 돋는 제목과 알록달록 귀엽고 깔끔한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이 책이 과학책이라니 놀랍다. 자칫 딱딱할지 모를 전문적인 내용에 겁먹지 않도록, 또는 책에서 다루는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이름에서 상상될 징그러운 벌레 이미지를 벗고자 이런 디자인을 택했을지 모르겠다. 분명 내용은 흥미 없어도 예뻐서 사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사실 이 책은 '사이언스온'이라는 과학 웹진에 실린 글 중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는 국내 연구진 다섯 사람의 글 중, 예쁜꼬마선충과 관련된 글만 모아다 엮은 것이다. 사이언스온 홈페이지에서 책 본문의 원문을 찾아볼 수 있는데 책에 실린 글자 그대로다. 예쁜꼬마선충을 언급한다는 점을 빼면 주제도 제각각이다. 매 파트마다 주제가 다른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예쁜꼬마선충은 현대 생물학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표준 생물로서 기르기 쉽고, 몸이 투명해서 현미경 관찰이 용이하며, 신경계가 단순해서 전체 신경 연결망(커넥톰)가 모두 파악된 유일한 생물이다. 생김새와 달리 인간과 유전자를 60%나 공유하고 있어 의학 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다. 이 생물을 이용한 연구가 워낙 편리하면서 유용해서 수많은 생물학적 위업들이 바로 이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이 벌레연구만으로 나온 노벨상만 해도 세 건이나 된다. 

책은 예쁜꼬마선충을 연구에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부터,  예쁜꼬마선충을 통해 이뤄진 신경학, 유전학적 위업들을 심도있게 설명한다. 나같은 일반인에게는 꽤나 어려운 내용이기도 했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현대 생물학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왜 생물학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벌레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최초의 '의식'이 바로 이 벌레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 영상처럼 이 생명체의 모든 뉴런과 각 근육, 감지 기관과의 연결망, 즉 커넥톰이 모두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및 로봇으로 하여금 인공적으로 벌레의 의식을 구현해 낼 수 있다. 어떻게 행동하라고 프로그래밍 해 둔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몸이 기계일 뿐 온전한 한 마리의 예쁜꼬마선충인 것이다. 만약 예쁜꼬마선충이 책 제목처럼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이 로봇도 마음이 있을 거다.

단일 뉴런 하나는 다른 뉴런으로부터 그저 강한 자극과 약한 자극 두 가지 신호만 수신하며 그에 맞춰 두 가지 신호를 다음 뉴런으로 전달할 뿐이다. 이 뉴런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위 로봇에 탑재된 것과 같은 생명체의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 역시 예쁜꼬마선충의 경우보다 좀 더 복잡하게 연결되었을 뿐, 수천억 개의 뉴런 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영혼이란 것은 없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예쁜꼬마선충을 통해 현대 생물학의 최전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책이 예쁘기까지 하니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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