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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지 않는다 - 세상에 가려지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 11명의 이야기
박희정.유해정.이호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멋지고 당당하고, 그러면서 섬세하다.
11명의 구술자들도 그렇지만, 이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한 챕터에 집약하며 말, 감정, 개성 등을 섬세하게 살려낸 3명의 저자도 대단하다.
한 사람의 삶은 하나의 소설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삶을 필터링하지 않고 또렷하게 살려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들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찾아보니 구술기록활동을 전문적으로 하신 분들이던데, 그들의 앞으로의 작업도 크게 기대가 된다. 책 곳곳에는 구술자들의 생소리가 발췌돼 있다.
이 말들이 정말 마음을 울린다. 각각의 어감을 그대로 살린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말 속에 강한 주관이, 뼈가 있다. 그 발췌된 말들만 모아서 읽어도 이 책의 훌륭함을 알게 된다.
“사람에겐 고난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잖아? 그걸 어떻게 극복
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그걸 극복 못 하는 사람도 있고, 극복
해서 조금 나아지는 사람도 있고, 아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다르니까 고비를 나랑 똑같이 넘기지는 않을 거
야. 종종 나는 그 고난을 어떻게 넘겼을까 생각해보곤 하는데,
‘아 저렇게 넘긴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삶이었
으면 좋겠어.”
“사실 처음엔 나조차도 내가 잘못한 것처럼
부끄럽고 숨고 싶더라. 애 아빠가 바람이 나서
갈라선 건데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조차
나를 더는 모임에 안 부르는 거야.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고. 이혼한 게 내 죄야?
그래서 계속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지.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내가 당신들한테
거저 얻어먹는 것도 아닌데 왜 쫄려야 돼?”
“ 제가 진짜 편하게 생각하는 한국 동생이
있거든요. 걔랑 전화하면 그런 말을 해요.
‘ 누난 북한에서 온 것 맞아? 누나는
진짜 활발하고 자유롭잖아. 북한에서
왔다고 말할 수 없는 마인드야.’
제가 그랬죠. ‘북한에서 왔다면 어떤
마인드야? 어떻게 살아야 돼? 말해줘.
그럼 내가 그렇게 살아갈게.’” (웃음)
“내가 왜 내 아이를 구걸하면서 키워야 해?’ 하며 마음이 확 상
했죠. 그래서 독한 마음을 먹고 ‘내가 할게, 내가 갈 수 있어’ 하
며 모험을 한 거죠. 그날 이후 걱정이 확 줄면서 자신감이 생기
더라고요. ‘아, 나도 내 힘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