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1
Murakami Motoka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6년 10월
평점 :
절판


원래부터 일본판 시대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그나마 좋아하는게 있다면 근대 보다는 나라, 헤이안 시대. 그것도 단지 길게 묶은 머리 스타일과 치렁치렁한 여자들의 옷차림이 좋아서라는, 다소 자기 중심적인 이유 때문이다.

만화 마니아인 내 친구가, 2년 전부터 이 만화를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은 것은, 1권부터 나오는 주인공의 검도 격투 모습에 질려서. 워낙 격투기 만화는 싫어하는데다, 그림체도 맘에 들지 않고,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 만화였기 때문. 게다가 배경 까지 1900년대라니...

그러다 결국 보게 된 용. 1권은 솔직히 재미없었지만, 갈수록 만화 자체가 일관성을 잃고 몇번 변신을 하더니, 무척 재미있어졌다. 처음엔 바람의 검심 류의 무도 만화로 시작하더니, 그다음은 일본 1900년대를 보여주는 시대극 만화가 되고, 다음엔 '유리 가면'류의 연극 만화로 변모...참 변화 무쌍한 만화다.

다른 내용을 떠나서 이 만화가 맘에 들었던 건, 1900년대의 일본 시대상이 너무나 잘 드러난 그림 때문. 옷차림, 간판, 실내 인테리어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고증을 해서 그려낸 작가의 성실성이 감동적이다. 19세기말 유럽의 흥청거림을 조금 뒤늦게 받아들인 20세기 초 일본의 모습은, 어딘지 낮설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도기의 일본은, 어쩐지 어린 아이가 새로 크레용 한 세트를 받아 주저주저 하면서도 그 색채의 가능성과 다양성에 바로 매료되어 종일 스케치북을 잡고 놓지 않는 그런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어찌 됐건, 그 시대의 우리는 워낙 팍팍한 일상에 잔혹한 탄압, 그리고 썩어빠진 정치만 남아 있어서인지 별로 아름다운 시대로 기억되어 있지 않다. 반대로 일본은 승승장구, 항복 전까지 잘 나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벨 에포크'로 아름답게만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천재 유교수의 일기'에서도 간혹 그런 회상 장면이 등장하는 것처럼.

어쨌든 읽어 볼 만한 만화책. 나름대로 자신만의 코스모폴리탄 사상을 만화책에 투여하려는 작가의 모습도 보여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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