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기로 했다
앤드루 포스소펠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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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어느새 내 취미가 되어있었다. 사실, 두 발로 다니는 걸 취미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웃긴 감도 있지만, 최소한의 소지품만 지니고, 아니 어떨 때는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몸만 집 문 밖으로 샤라락 던지고 나서 한참을 자유롭게 걷다가 살짝 땀이 날 때 시원한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미션 책 나는 걷기로 했다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3주간 단체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에서는 내가 짠 계획 말고는 아무 것도 시간적으로 나를 구속하는 것이 없었으므로 (사실 그 계획도 매우 유동적이었다.) 나는 훨씬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 24일간 약 20개 도시를 다녀왔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거리를 걸어서 각 여행지를 떠날 쯤에는 골목들이 내 머릿속에서 연결되어 간략한 지도를 이루었다.

 

그렇게 걷는 중에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아침 식사를 하며 친해지고 나중에는 선물까지 준 버스 기사 아저씨, 체스키크롬로프에 불쇼를 하러 왔지만 기념품 가게도 하고 있다며 체코어 발음을 알려준 아저씨, 바츨라프 광장에서 프라하의 봄에 대한 영상을 옆에서 보다가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냐며 말을 걸던 얀, 독일에서 오페라를 보러 옆 나라까지 온 신사 할아버지, 헝가리 전통 음식을 알려준 숙소 직원, 함께 사진을 찍은 친절한 식당 종업원, 누구보다 많은 역사적 정보를 알려준 1일 가이드, 그리고 이번 여행을 같이 한 동행들... 그들로부터 짧고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24일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여행지 자체보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더 가슴에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펼친 이 책의 저자 앤드루 포스소펠은 듣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했다. ‘Walking to listen’이라는 팻말을 가방에 붙이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쌓으며 하루하루를 걸었다. 여정의 막바지에 이르러 느끼는 이 애매한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실은 내가 받은 모든 것에 대한 떨리는 기쁨, 나라는 존재를 향한 경이로움이 아닐까? 나는 나와 함께한 그들을, 6,400km를 걷는 동안 만난 그들을, 당황스러울 만큼 위대한 그들의 복잡성을, 그들의 아름다움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전에는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못 볼 그들의 독특함을 느꼈다. 그들의 갈망을, 그들의 승리를, 그들의 망가짐을 느꼈다.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 남기를 선택한 온갖 방법을 보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들이 베푼 친절과 아무런 대가 없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가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조차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축복해주었다. 내가 내 자신을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나를 믿어주었다. 최고를 기대해요.” 조젯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가 아닌 다른 것을 기대할 이유가 뭐 있겠나?죽음에 대한 내 두려움은 걷기 여행을 마치고 다음 단계로 가는 하나의 길 안내처럼 보였고, 아직 배워야 할 교훈의 도입부이자 완전히 새로운 질문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날 밤, 숲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끝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저자에 비하면 나는 숙소와 교통수단이 보장된, 즉 안전이 보장된 매우 호화로운 여행을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난 심정은 그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 응원하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작은 호의가 어떤 행복감을 만들어내는지 깨달으면서 나는 탁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할 힘을 얻었다.

 

만약 스물세 살의 당신을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겠습니까?

 

여행을 앞두고, 여행을 다녀와서, 아니면 굳이 긴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초조함과 불안이 담긴 저 부탁에 대한 위안을 이 책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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