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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원한’의 이면은 사랑이다.
「대불호텔의 유령」은 악의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정체모를 목소리가 들리고 알 수 없는 의문이 생겨난다. 원인을 규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의뭉스러운 마음은 커져간다. 음해하는 소리는 커져가고 미움밖에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멸시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원망이 되었고, 공포로 확산되었다. 중화루, 대불호텔, 셜리 잭슨, 고연주와 지영현 어느 것도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이미 발동된 원한은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멸시하고 미워함으로써 생기는 부정적인 상이기 때문이다. 원한은 공포를 확산시키면서 동시에 공포로 인해 발동된다. 어느 순간 원한이 나를 괴롭히는 것인지, 내가 원한을 만드는 것인지 선후관계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미스테리의 행방은 점점 알 수 없게 되고, 허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악의, 원한, 원망만 있으면 되니까.
진실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원한’의 뒷면은 사랑이었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면, 미워할 수밖에 없는 양가감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편 뢰이한이 죽고 나서, 박지운은 뢰이한을 모욕했다. 뢰이한 때문에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며 망자를 원망한다.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건 슬픔보다 큰 분노였기 때문이다. 그래, 사랑은 사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의 크기만큼 상처도 수반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나의 세계와 그의 세계의 교집합을 늘리게 된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하는 것이 늘어난다. 안전지대를 이탈하게 되면서 위험을 걸게 되고,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상대에 대한 사랑만큼 기대하고, 어긋나면 실망한다. 그래서 ‘원한’은 때로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삶을 살게 될까. p.296'
뢰이한을 잃게 되자, 박지운에게 사랑은 절망으로 돌아왔으며, 삶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무너지기 않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건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너를 망가트릴 수만 있다면, 너를 부정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뢰이한에게 사랑은 나를 부정하는 세계에서 ‘기꺼이’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뢰이한은 한국에서 청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으로 취급되고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뢰이한이 한국에 남아있던 건 중화루와 박지운, 그리고 보애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건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나보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것은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살고 싶게 만드는 것도 삶을 망치는 것도 사랑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악의가 아니라 긍정적인 포용으로 더 나아가는 것. 그게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