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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1권 - 도원에 피는 의(義) ㅣ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금세에 삼국지를 읽음에서 재미를 구한다는 건 난관일 수 있다. 이 길고 긴 이야기를 풀어놓음이 너무 단조롭고 허황되며 공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 문맥의 흐름이 시대에 어울릴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삼국지를 읽는 이유는 삼국지란 고목의 영험함을 알기 때문이다. 뿌리는 깊고 넓어 뽑힐 수 없으며 기둥은 높으면서도 두꺼워 흔들릴 일 없다. 가지는 곧고 많되 섞여 얽힘이 없으며 잎은 풍성하여 두루 빛을 받아 밝다. 따라서 멀리서도 그 모습을 가릴 일이 없으며 쓰러짐 없이 장수하기에 능히 신수라 불리며 존경 받는다.
우리가 삼국지를 읽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눈이 있고 귀가 달린 자라면 이 거목을 모르고 지나칠 수는 없기에. 그곳에서 열리는 과실이 얼마나 흐드러진지 시간과 사람이 증명해줬기에.
1권은 고목의 영험함을 알기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유비·관우·장비의 활약상은 과장의 도를 지나쳤으며 모든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할 뿐인 것 같이 싱거우면서도 허황되어 이야기의 몰입을 흩뜨리고 진실성을 없앴다. 무릇 이러한 것들이 삼국지에만 있는 모순은 아닐 것이다. 소설과 역사가 만나면 일어나는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엔 솜씨 좋은 글쟁이들이 그 사실을 교묘히 감추어 언뜻 자연스럽게 보일려 다듬고 꾸미는 반면, 삼국지에는 이러한 솜씨 좋음이 없음일 뿐일지도.
이것 또한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변화일 것이다. 서사에 나온 옛사람의 말과 같이 달의 참크기는 변함없되 차고 이즈러지는 것 처럼 삼국지가 그렇다.
그렇다고 1권이 참을 인忍의 장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역자의 말처럼 젋은이들의 용기와 포부를 길러주고 지혜와 사려를 깊게 해주는 삼국지의 어떤 것들을 엿볼 수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언행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곳에 가장 탐스러운 과실이 숨겨져이다. 삼국지는 다름아닌 그들의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