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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
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이숲 / 2017년 7월
평점 :
조재룡의 책 <번역하는 문장들>에 보면 '소개 차원의 번역'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떤 나라에는 이런 내용의 책이 나와 있다'는 식으로 말할 뿐인 번역이라는 소리다. 그런 번역에서 원작의 문학성은 모두 사라지고 읽기 쉬운, 도착어로 된 평이한 문장만이 남는다. 번역가에게 이만한 혹평이 또 있을까? 이 책이 그렇다고 본다.
'원문이 괴물이면 번역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을 번역한 공역자들은 이 책에서 중요한 건 내용 뿐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괴물을 괴물로 옮기려 한 흔적은 눈을 닦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원문을 믹서기로 간 후 흐물흐물하게 남은 '내용' 반죽을 한국어의 틀에 부어 대충 굳혀 놓은 판판한 문장이 이어질 뿐이다. 한두 문장(심하면 두세 문장)을 하나로 합쳐 놓거나, 긴 문장 하나를 두세 문장으로 썰거나… 개중에는 아예 건너 뛴 문장도 있으니 역자들의 점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번역을 앞에 두고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건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번역' 자체가 틀려먹었기 때문이다. 뭐 그리 난도질을 해 놨으니 한국어로 읽기 쉬울 수는 있겠다. 이런 책을 한국에 소개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번역본 좀 내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