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농장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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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코는 달렸다"


긴장하며 펼쳐 든 책 페이지의 첫 문장. 이 이야기의 시작은 사건이 아닌 주인공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몇 장 읽다 보면 힘이 들어간 어깨, 부릅뜬 눈은 서서히 편안해지고 경계를 풀게 된다.

그렇다고 장난스럽거나 밝지도 않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빌려 말하자면 주인공의 일상 속 배경들은 로맨틱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연못에 커다란 벚꽃 나무라던지, 주인공의 출퇴근 운송 수단인 케이블카 등 90년대의 아날로그적이며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드라마 같은 분위기, 이는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이 추리 소설이 맞나 착각이 들게끔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꿈만 같은 광경을 가진 산 중턱에 위치한 세이레이 병원은 주인공에게도 꿈의 직장이다. 그러한 꿈의 직장에 간호사로 일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다룬 내용인데,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자극적인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다. 책 표지에서도 예상했듯이 "무뇌아를 이용한 소아 장기 이식"이라는 주제만 보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잔잔한 일상 속 갑작스러운 사건들은 그 어떤 스릴러보다 더 충격적이고 먹먹하기까지 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치 뉴스로 접하듯 믿을 수 없게 밀려오듯 알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도 어색하고 괜히 불편한 기분에 스릴러처럼 절정에 치닫기를 바라보지만 작가는 나에게 끊임없이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무뇌아는 인간일까? 인간이 아닐까?"


"짜릿한 청량음료가 아니라 공들여 우려낸 우아한 녹차의 맛"이라는 출판사의 책 소개처럼 범죄자를 추적하는 짜릿한 의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윤리적 고민에 대한 주제에 더 충실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봄 기운 같은 묘사들이 인간미를 더하고 독자의 감성을 자극한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한다.

이 물음에 정답은 없다. '무뇌아도 인간'이라는 차장의 말, '무뇌아는 신이 준 선물'이라는 간호사의 말, 대립하지만 나름 주는 메시지가 있다.

- "만일 당신의 아이가 이식수술 없이는 살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누군가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무뇌아의 장기 이식을 제안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무뇌아는 인간일까? 인간이 아닐까? 무뇌아에게 삶과 죽음이란 게 존재할까? 뇌가 살아있어야만 인간인가? 아니면, 사지와 장기가 꿈틀대기만 해도 인간으로 봐야 할까? 어차피 하루도 채 못산다면, 그 장기를 이용하여 여러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

각자 놓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답, 이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요소를 넣으면서 선과 악이 구분 지어진다. 연구 성과, 돈. '목적'을 가진 무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무뇌아라면 생각의 시선이 달라진다.
단순한 무뇌아의 문제 밑바닥에 깔려있는 여성 인권의 문제로 닿게 되니 끔찍하고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아기를 무뇌아로 '만들어버린' 의사들의 달콤한 말로 꾀어내는 의사는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에 벗어나는 인물이다. 
 
사건은 끝이 난다. 선과 악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토리는 끝이 났음에도 여전히 무뇌아는 인간인가? 에 대한 물음은 책을 덮고도 결코 결론 나지 않는다.


p.348
삶이 어떤 형태로 갑자기 끝을 맞이하든 그건 중단이 아니라 완결이다. 최선을 다해 산 결말이다.



주인공의 그냥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주인공은 차분한 성격이다. 작가의 문체, 즉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 읽다 보면 꽤 많이 사용하는 말투가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말하지 않았다.' 부분을 읽을 때 속으로 외쳤다. '안돼! 말해야 해', 그리고 또 다른 상황에서 읽었을 땐, '그래 잘했어 말하지마!'하고 이입하게 되었는데, 내 생각과 다른 방향의 전개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왜 몰랐단 말이지. 더 예리하게 이 문제를 보게되었다. 끊임없이 이 상황에 물음을 던지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직접적인 체험보다 책, 특히 소설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으로 삶의 문제를 더욱 예리하게 생각할 계기를 갖게 된다는 이동진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은 끊임없이 물음을 던졌고, 어느 정도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것 같다. 나였다면 이미 첫 번째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몰입이 힘들었던 포인트


1. 독자인 나를 따돌리는 그들만의 러브 라인. 마토바 남의사의 가치관
2. 맥락 없이 질주적인 사명감, 집요함.
3. 아- 좀 길다 싶은 상황 묘사


p.314
단 유일한 예외가 있다. 임신 지속, 그리고 출산이 임부와 의사 둘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다. 그게 뭔가 하면... 무뇌아를 사용한 장기 이식이다. 하늘이 내린 정교한 장기 제조 공장, 그게 자궁이다. 의사의 입장에서도 태내에 있는 건 그 어떤 첨단 기술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정밀 기계다. 쓸 데는 얼마든지 있다.

장기농장은 '병원'이 아닌 임산부의 자궁이라는 부분, 장기농장 책 제목의 비밀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머리가 띵했다.

언제부터 프로 불편러가 되었을까. '하늘이 내린 정교한 장기 제조 공장, 그게 자궁이다.'라는 부분이 심불편했고, '처음 보는 주인공을 보았을 때 다리를 보고 안고 싶었다'는 첫 눈에 반했던 날을 회상하며 쓴 고백 편지 내용 구절, 나라면 그 편지를 읽고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그 편지에는 다른 문제점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권력욕과 출세욕에 눈이 먼 다른 의사와는 달리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대신하여 이 사건을 더 적극적으로 나서 맞서는 그런 장치의 캐릭터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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