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 우리 시대 기독 지성 25인의 여정
리처드 J. 마우 외 지음, 캐서린 애플게이트 외 엮음, 안시열 옮김 / IVP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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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간 교계를 뜨겁게 달구는 논쟁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오랜 시간 반복되는 논쟁을 한 가지 꼽으라면 창조-진화논쟁이다. 개인적으로 신대원시절에 학우회를 하면서 이 논쟁을 두고 작은 세미나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로부터 거의 3~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논쟁은 식을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원제: How I Changed My Mind About Evolution)25명의 기독교 지성들이 진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단편기록들이다. 원제는 입장을 바꾸게 된 자전적 기록을 강조하고 있다면, 번역된 제목은 진화라는 도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책 내용에 충실한 제목은 원제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번역된 제목이 좀 더 타당하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인 이 책이 2016년에 발간된, 즉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는 책이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창조-진화 논쟁의 양상은 생각보다 2019년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고수하는 북미복음주의파와 창조기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진화의 증거들을 수용하려는 진화창조론자들의 논쟁은 그 소재(젊은 지구론 등)부터 양상까지 한국과 참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느 나라나 교회는 이렇게 답답한 세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가- 하는 푸념이 나오는 동시에, 한 편으로는 미국도 그렇구나- 하는 씁쓸한 위안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어떤 이론이나 지식들보다, 그들의 삶을 통해 큰 배움을 얻기 마련이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기독교 지성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갔는지 그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창조-진화더 나아가서 과학-종교논쟁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 그 실마리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저자들의 짧은 글들이 모여 있기에 이 책은 창조-진화논쟁에 있어 다양한 접근을 살펴볼 수 있다(물론 진화에 대한 수용, 창조진화론으로 귀결되기는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진지함겸손함이다.

 먼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마주하는 상황을 진지하게 대해왔음을 고백한다. 진정한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요구한다. 이것은 비단 과학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마주하던, 그것에 대한 충분한 배움과 이해의 과정을 먼저 겪어내야 한다. 논쟁과 대화는 서로를 충분히 알게 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며, 그런 대화가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대화가 된다.

 책의 저자들은 과학이 가져다 준 진화라는 커다란 도전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충분히 진지하게 배우고 숙고했음을, 그리고 지금도 그 배움이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한다. 한국교회는 진화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배우려고 했으며, 그 이야기를 경청했는지를 반문해본다. 당장 나부터도 진화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바가 없다. 기껏해야 대학생 때 읽었던 칼 세이건과 스티븐 호킹의 책 몇 권과 강의들, 그리고 어렸을 때 읽었던 과학서적이 내 과학지식의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대화 한다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판단을 하기 전에, 내 신념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주어진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감사한 것은 근래 이 주제에 관련된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출간된 신학자의 과학 산책(새물결플러스, 2018)이 최근 읽은 이 분야 책에서 가장 쉬우면서 따뜻한 책이었기에 이 책과 함께 곁들여서 추천하고 싶다.

 두 번째로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겸손함이다. 이들이 진지하게 주어진 문제에 천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신앙과 지식에 있어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경 몇 구절 담겨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가 다 알 수 없다 고백하며, 그렇기에 발견되는 진리들에 대해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숙고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창조-진화 논쟁에서 진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이 문자적인 사실로 남아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염려, 우리가 그 도그마를 지켜야만 교회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크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과소평가하는 교만함의 산물이다.


 학부시절에 모 교수님의 말씀 한 마디가 기억이 난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 크시고 깊으신 분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보다도 더 넓으신 분이다. 진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니 진리를 믿고 자유롭게 신학을 해보자프랜시스 콜린스 또한 책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그분의 창조 세계에 대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위축되거나 위협받으실까?”(103)

 진정한 겸손함은 내가 붙들던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함 속에 있다. 6일 만에 창조가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지구가 젊지 않아도 진리는 여전히 진리로서 우리에게 현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겸손하게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과 우리가 과학으로부터 배우는 바에 감탄할수 있다.(123)

 

 개인적으로 갓 안수를 받고 사역의 현장에 뛰어든 새내기 목사로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바이다. 여전히 주어진 현장에서는 창조냐 진화냐 이지선다의 선택이 강요되며, 그 외의 길을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나에게 다가온 이들이 그 누구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려 하는 이들임을 보았다. 그리고 바다건너 이런 이들이 빛을 발하고 있듯이, 이 땅에서도 그런 이들이 있음을 본다. 그러니 여전히 희망은 있다. 더 겸손한 신앙, 그래서 더 깊은 신앙의 자리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C.S 루이스의 글귀 하나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될 요량이라면 내 경고 한 마디만 하겠소. 당신은 당신의 전부-두뇌를 비롯한 모든 것-를 요구하는 여정에 오르는 것이오”(순전한 기독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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