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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 광복회 총사령 38세 우국충정의 일대기
문선희 지음 / 책만드는집 / 2010년 2월
평점 :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영웅이 뭐야?”
이 느닷없는 물음에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영웅이란 뭘까?
“음,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일 것 같은데.”
그렇게 대답했더니,
“그럼, 오바마 같은 사람?”
아이는 막연한 설명보다는 실체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모델.
이 질문을 받을 무렵 내가 들고 있던 책이 이 책이다. 박상진!
꽤 두툼하다. 아이에게나 나에게 항일투사 안중근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박상진이라니, 광복회의 수장이었다니, 생소한 이 이름을 따라 나섰다.
처음 장에 등장한 사형 장면. 그렇다 그는 독립투사였다. 3년6개월의 옥살이에서 모진 고문을 당해야했고 사형 집행 전날까지 흐트러짐 없이 책을 읽다가 나라를 위해 순국한 영웅이었다. 울산 송정, 경주에서 나고 자라 만주 연해주 등 삼천리 방방곡곡도 모자라 중국 만 리까지 다니며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분이었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쏟아 붓고 종내는 목숨까지 나라를 위해 내놓은 위인. 뼛속깊이 조선인이었던 사람. 위태로운 나라를 위해 자금을 모으고 동지를 모으고 무관학교를 세우고 항일투사들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광복회를 결성하여 악에 맞서 싸운 사람. 먼저 조금 더 깨우친 사람이 다른 이들을 깨우쳐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고자 노력했던 사람. 그리고 따르는 사람들.
이 책에는 박상진과 함께 항일투쟁을 벌인 안중근, 신채호, 김좌진, 신돌석을 비롯하여 400여명이 넘는 독립투사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벌인 항일투쟁사를 이 책은 하나로 모은 느낌이다.
박상진에 포커스를 두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방대한 항일 운동 자료를 보는 듯하다. 또한 400여명의 항일투사들과 함께 했던 수많은 민초들도 거기 들어있다. 그 이름들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분들이 있으랴. 영웅이란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 나라 잃은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구국의 길에 함께했던 백성들. 모두 영웅이 아닐까?
이 책 속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거사 현장에서 통쾌함과 서글픔을 느끼며 박상진이 혼자 절규하는 장면이다.
‘스물일곱에 뜻을 이룬 안중근.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이 더러운 세상. 내 어릴 적에는 한 번도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배움의 길을 나섰던 내가 신학문을 익혀 그 학문을 바탕으로 한평생 직업인으로 살 줄 알았는데 이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사가 되어가는구나. 아, 아, 조국을 잃은 비통함이여!’
인간의 탐욕이 사람됨을 거스르게 하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전쟁이란, 남의 나라를 빼앗는 일이란 사람이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전쟁이 낳은 영웅, 약탈 속에 태어나야하는 영웅들은 참 슬픈 이름들이다.
영웅이 필요치 않은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박상진은 슬픈 영웅이었다. 나라를 찾기 위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별들에게 죄스럽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나? 이 책을 덮으면 조상들이 지켜낸 나라에서 현대를 사는 나는 어찌 살아야하나? 누구나 묻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