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학의 기원
야마다 케이지 지음, 윤석희.박상영 옮김 / 수퍼노바(도서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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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중국의학은 전국시대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춰왔을 것이라 추측한다. 학생시절 중국의학/한의학의 가장 오래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혹은 고전이라 전해지는) 황제내경소문을 읽으면서 어리둥절하던 기억이 난다. 음양오행론이나 양생에 관련된 내용들이 앞에 나오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되는 부분인데, '경혈' 즉 혈자리에 대한 이름이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뜸을 뜰때는 "푹 꺼진 부분에 뜸을 뜬다", 침을 놓을 때는 "족태음을 찔러라", "족양명을 찔러서 피를 낸다" 이런 식이었다. (가끔 안쪽 복숭아뼈 위 어디, 무릎 뒤쪽 이런 식으로 나오기는 한다). 황제내경소문이 나온 시기에는 경혈이 확립되진 않았고, 피를 내는 침법 (사실은 폄석법일 것이다)이 많아 보였다.

주요 경전중 하나로 생각되는 영추경의 서문격인 구침십이원을 보면, 구체적인 경혈로 오수혈 이름이 나오지만 12경락이 아닌 5장 6부에 맞춘 11경을 대표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 침중에 소침, 미침 즉 작은 침으로 기를 조절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데, 9침중에서 1은 참침이다. 그다음 피침, 원리침, 등등을 들고 있는데, 1-2개 빼놓고는 출혈도구나 적출도구에 가까와 보였다. 아마도 옛 문헌들을 모은 뒤 서문 격으로 구침십이원, 소침해 등등의 내용을 앞에 덧붙인 느낌이 드는데, 그 내용도 현재의 한의학 침법과는 다른 분파를 얘기하는 부분이 많은듯 하여 재미있게 보던 생각이 난다.

마왕퇴 백서의 경락관련 내용은 더 놀라왔다. 백서의 도덕경은 비록 글자나 편제는 달라도 많은 문단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경락에 대한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족6경은 그대로 이름이 있지만, 수6경은 그렇지 않았다. 이맥(귀경락), 치맥(치아경락), 견맥(어깨경락) 이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이 자료 하나로 전한시대의 중국의학의 수준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락이론의 초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도대체 중국의학/한의학의 초기 모습은 어땠을까? 황제내경소문에 나오는 간단한 처방과, 상한잡병론의 처방들, 그리고 소위 "후세방" 은 자주 쓰는 약재에도 약간 차이가 나고 처방을 구성하는 논리도 다른 계열인 것 같은데, 이들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야마다 케이지선생은 폭넓은 문헌의 지식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가설을 소개한다. "작업가설" 들 중 재미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태초에 폄석이 있었고, 나중에 침법을 중요시하는 학파가 한의학을 장악했다.

- 약물, 그중에서도 탕제는 처음에는 소변 관련된 질병에 쓰였다. 둘다 물이기 때문에.

- 탕제 중 술 관련된 약은 땀을 내는데 쓰였다.

- "풍"은 전쟁과 관련된 점술가들의 논리에서 나왔는데, 나중에는 내 몸의 허/실에 따라 풍을 받아들이는 양상이 다르다는 식으로 한의학의 "보법" 중시 논리로 진행되었다.

- 신, 왕망 시대나 북송 시대에 해부의 경험이 있었고, 그 기록들이 "백고"의 문답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오장육부의 길이, 부피, 심지어 혀의 무게 등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영추경에 나오는 내용들은 해부학에 근거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특히 약물이나 점풍에 관한 내용은 기존 한의서에서 보지 못하던 탁견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써주신 야마다 케이지 선생님과, 잘 읽히게 번역해 주신 윤석희/박상영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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