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파랑
정이담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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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고 깊은 파랑은 어둠을 닮았다

 - 불온한 파랑을 읽고





그들은 특이한 옷을 입지도, 괴상한 얼굴색을 가지지도 않았다. 평범한 옷과 평범한 바지, 평범한 신발을 신었다. 서로가 동일한 혐오를 공유하는지 확인할수록 의기양양하던 그들은 무리에서 떨어진 후 겸손한 얼굴로 숨었다. 그 안온한 얼굴들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삶을 살고, 같은 버스에 앉아 숨을 내쉬고……. 그걸 생각하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몸서리가 쳐졌다. 희생자보다 집값 얘기를 하는 이들이 근처에 있다면 어쩌지. 누구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은하는 차라리 먼 별로 가고 싶었다.

책 '불온한 파랑' p.37




처음 책을 펼치고 세월호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동안 세월호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어왔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드는 경험의 무게가 차곡차곡 쌓여 마음이 묵직했다.

그런데 그게 될까.

누군가의 아픔은, 충분히 말한다고 괜찮아 지는 걸까.

가족을, 소중한 사람을, 내 인생을 지탱하던 한 기둥을 잃은 이의 이야기를 누군가 많이 들어준다고 해서 괜찮아질 리 없다는 것을

나는,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적 보복이나 논란에 휘말리지 않고도 온전할 수 있을까. 그런 세상은 올까. 탐욕은 쉽고 빠르게 세력을 넓혀 거꾸로 된 진실에 자주 투사되었다. 제가 써야 할 굴레를 남에게 쉽사리 뒤집어씌웠다.

책 '불온한 파랑' p.110




생소한 단어가 많이 나오지만, 표지 만큼이나 깊고 무거운 슬픔의 파랑은 이야기 내내 나를 바다로, 우주로 데려간다.

해수와 은하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들의 이름을 지으며 작가가 했을 생각을 상상해본다.

바다에서 인생의 일부를 잃은 아이들이 다시 그 곳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를 쓰기까지,

타인의 아픔과 상실의 무게를 가늠해 봤을 날들을 어림짐작해 본다.

책은 분명 세월호로 시작하지만 지구 환경이 파괴되어 일어나는 일의 심각성과, 팬데믹으로 죽어나가는 인류까지 그려낸다.

그 긴 지구의 호흡 속에서 두 아이는 수많은 부조리를 마주하며 '불온'한 존재로 자라난다.




그 위로 태양 광선이 기울어 난생 처음 보는 색으로 달이 빛나자 지구는 고백했어.

죽음 속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태어나는구나.

달은 반쪽자리 얼굴로 미소지었어.

사랑이란 얄궂어. 부서지는 만큼 탄생하니까.

책 '불온한 파랑' p.220.




깊고 짙은 파랑은 어둠을 닮았다.

가장 짙은 어둠은 가장 희미한 빛으로도 사라진다 했건만

스스로 눈을 감고 빛을 등지고 깊이, 더 깊이 가라앉는 이의 어둠을 들여다본다.

쌍둥이 같은 두 소녀의 입맞춤을 목격한다.

고대부터 지구에 존재한 형상이 되어 지구에 고인 아픔과 얼룩진 더러움을 마주보는 그들의 여정을 묵묵히 따라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딪쳐 태어난 감정에 감히 사랑이란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은하는 우리가 어쩌면 퀘이사가 될 수 있으리라 답했다. 거대한 거울이 된 지구가 태양열을 흡수하면 내밀한 폭발이 일어난다. 어떤 별들은 스스로의 심층으로 붕괴하여 찬란한 빛의 숙명을 완수한다. 사람의 가슴에는 65억개 태양만큼의 에너지를 품은 점이 있다. 우리가 별의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증거였다.

책 '불온한 파랑' p.245




찬란한 빛이 되어 흩날리는 아이들은 지금도 여기에, 그 날 부터 계속, 여기에.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바다에 잠긴다.

소독약 냄새가 섞인 바다냄새를 상상한다.

어둠이고 빛이고 일상인 그들의 아픔을 더듬어본다.

기억하겠다는 약속의 유효기간은 나의 몫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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