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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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훈 - 남한산성

 

 

 1636년 인조14년 겨울, 조선의 왕 인조가 궁궐과 성, 백성들을 버리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47일간 청나라를 상대로 버티다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는 치욕적인 사건, 병자호란이 바로 이 김훈의 남한산성 책의 시대적 배경이다. 청나라 군사들이 남한산성을 둘러싸게 되고 백성들과 관료들은 식량 보급마저 끊어져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된다. 쓰다남은 가마니, 짚신 한 켤레로 눈보라와 추위를 버티며 청을 상대로 고기방패가 되는 백성들과 살고 싶어 처절하게 싸우는 군사들의 모습이 가슴 한 켠을 저리게 한다.

 

 청과 화친을 맺어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자는 주화론을 내세운 최명길과, 패배하는 한이 있어도 청나라와 싸워나가야 한다는 척화론을 내세운 김상헌. 나름 소신 있는 두 충신의 신념 대립이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주된 시사점으로 그려진다.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굶어서 죽어가고 칼에 맞아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고 초지일관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과, 우국충절, 굳은 절개를 그리는 김상헌의 대립 내용이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나름의 충심으로 무장한 김상헌의 주장과 신념 역시 존중하지만, 나는 대체로 최명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더 많은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지만, 얼음길을 안내해 준 노인을 죽이는 김상헌의 행동을 보면서, 김상헌이 그저 충심만으로 척화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 당장 오늘의 생계부터가 걱정인 노인을, 청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조금의 가능성만으로 살해한 김상헌이 과연 충성심과 정의감만으로 노인을 살해한 것일까. 그러한 염려와 노파심에 김상헌은 충성심을 넘어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인을 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최명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나 이다.

 

 다른 나라를 상대로 맞선다는 것이, 더군다나 본인의 나라보다 강한 나라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과연 자존심과 명분, 신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 일까. 싸우고자 하는 의지는 투철할 지언정 남한산성에 갇혀 제대로 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눈보라, 추위와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전쟁이라는 것을 멀쩡히 해나갈 수 있을까. 이러한 남한산성에서의 농성은 말 그대로 대의명분이라는 허례허식 속, 벼슬아치들의 자존심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뚜렷하고 선명한들,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싸움이라는 것은 진행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을 반복해서 읽다가, 유난히 인상 깊은 구절을 하나 발견했다. 최명길이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라고 뱉은 부분에서 나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세계의 흐름을 읽어 나가야 한다는 이 구절이 김훈 작가가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와 같이 소설 남한산성은 단순하게 병자호란을 묘사하는 책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뜻하는 바,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굴욕적인 사건을 전달 받는데 그치지 않는다. 독자 스스로에게 여러 생각을 해보게 만들고, 다양하게 한 문장 한 문장을 고민해보게 만들며, 어찌 보면 단순한 서술일지 모르는 말에서 작가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준 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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