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쓸모 - 슬기로운 언어생활자를 위한 한자 교양 사전
박수밀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자의쓸모

#박수밀 지음

#여름의서재 펴냄


“넌 참, 좋은 기회를 발로 잘 찬다.”


혀를 내두르는 지인이 있다. 그 탐나는 기회 중 하나는 확실히 한자를 싫어해서 날렸다.


모름지기! 세상 만물은 생긴 걸로 판단하면 안 되는데 복잡하게 생긴 한자가 그냥 싫었다. 공부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한자를 피하느라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했다가 일본어로, 대학 땐 복수 전공으로 국문과를 갔다가 사회학으로 전격 교체했다. 다신 한자와 볼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직장에서도 만났다.


운명처럼 외국어학원 홍보일을 하게 된 것. 언어별 사업부가 나눠져 있었는데 개성이 강한 중국어 사업부가 경력으로 입사한 내 몫이 되었다. 


로케이션 시스템이었지만 어쩌다 내내 전담하게 됐다.

우리 마음은 아무도 몰라, 라고 하던 중국어 사업부는 마침내 그 완고한 마음을 열었고, 이후 나를 여러 모로, 여러 방면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들은 대리님은 우리 사람이라며, 중국어의 세계로 들어오라며, 사업부 가장 악명 높았던 K가 개인 무료강습을 자처한 것.


K는 L그룹의 임원진 중국어 통역을 담당하던 이였다. 하지만 한자가 어렵다는 철없는 이유로 시도도 하지 않고 한사코 만류하며 굴러들어온 기회를 찼다.


수많은 기회 중 단 한순간이라도 한자에 관심을 가졌다면, 인생은 또 어떤 순간으로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다.


길의 갈래는 모를지만, 지금처럼 글을 쓰는 일을 할지라도 더 생각하고 관찰해서 깊이가 달라졌을 것은 분명하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다!”_

- 비트겐슈타인


요즘 어휘, 언어에 대한 책에 목이 마르다.


<한자의 쓸모>는 사물을 보는 깊이를 더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책이다.

‘말 그릇, 세상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한 필수 교양서’라는 <한자의 쓸모>를 보는 순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자는 무슨, 우리말을 써야지.”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리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근데 한중일이 ‘한자문화권’이라는 건 팩트다. 현재 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대다수 단어가 한자로 되어 있다.


알아야 사물이든, 사람이든 제대로 보이고, 다시 우리말로 바꿀 힘도 생기는 거다.


날로 먹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번 배울 때 그냥 외우는 게 아니라 어원을 알면 문맥적인 흐름으로 나중에 모르는 단어(문제)도 유추할 수 있다.


영어도 그렇지 않은가.


작가의 말처럼 당(唐), 호(胡)가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알면,

당면, 당귀, 호주머니, 호떡, 호두가 중국에서 들어온 건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인문학적 성찰에서 뿌리와 근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저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얘기다.


마냥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고 나면 분명히 하나 이상은 남고, 세상을 보는 넓이와 깊이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 (저자도 아니면서) 장담한다.


1부(총 3장)은 한자란 활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2부는 관련한 삶과 문화가 실려 있다.

이런 친구를 주우(酒友)라 한다.

술자리에서만 친구라는 뜻이다.


눈앞에서만 아는 척하는 사람은 면우(面友)라 한다.

얼굴만 아는 형식적 관계의 벗이다.


(중략)


이런 사귐은

돌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석교(石交)라고 한다.


지극한 사귐이라는 뜻의 지교(至交)라고도 한다. - P207

별안간瞥眼間이란 말도 있다.


별瞥은

언뜻 스쳐 지나듯 본다는 뜻이니,

별안간은 눈 한 번 돌릴 사이의 짧은 시간이다.


삽시간霎時間도 있다.


삽霎은

가랑비 또는 이슬비를 말한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사이의 시간이다.


이들보다 더 짧은

시간의 단위는 찰나刹那다.


찰나는 인도어인 크사나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한 불경에 의하면

사람 둘이 명주실을 양 끝에서 잡아당긴 후

명주실을 끊으면 그 끊는 순간에

64찰나가 존재한다고 한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