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밀 지음
#여름의서재 펴냄
“넌 참, 좋은 기회를 발로 잘 찬다.”
혀를 내두르는 지인이 있다. 그 탐나는 기회 중 하나는 확실히 한자를 싫어해서 날렸다.
모름지기! 세상 만물은 생긴 걸로 판단하면 안 되는데 복잡하게 생긴 한자가 그냥 싫었다. 공부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한자를 피하느라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했다가 일본어로, 대학 땐 복수 전공으로 국문과를 갔다가 사회학으로 전격 교체했다. 다신 한자와 볼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직장에서도 만났다.
운명처럼 외국어학원 홍보일을 하게 된 것. 언어별 사업부가 나눠져 있었는데 개성이 강한 중국어 사업부가 경력으로 입사한 내 몫이 되었다.
로케이션 시스템이었지만 어쩌다 내내 전담하게 됐다.
우리 마음은 아무도 몰라, 라고 하던 중국어 사업부는 마침내 그 완고한 마음을 열었고, 이후 나를 여러 모로, 여러 방면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들은 대리님은 우리 사람이라며, 중국어의 세계로 들어오라며, 사업부 가장 악명 높았던 K가 개인 무료강습을 자처한 것.
K는 L그룹의 임원진 중국어 통역을 담당하던 이였다. 하지만 한자가 어렵다는 철없는 이유로 시도도 하지 않고 한사코 만류하며 굴러들어온 기회를 찼다.
수많은 기회 중 단 한순간이라도 한자에 관심을 가졌다면, 인생은 또 어떤 순간으로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다.
길의 갈래는 모를지만, 지금처럼 글을 쓰는 일을 할지라도 더 생각하고 관찰해서 깊이가 달라졌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