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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만의 섬세한 묘사와 놀라운 반전을 좋아하고, 때로는 그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사실과 아픔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방황하는 칼날은 그래서 골랐던 책이기도 하고, 아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 읽으려고 결심한 책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 방대한(...) 양에 놀랐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대개 200 내지 300 페이지의 양인데 500페이지가 넘는 양에 두 권으로 나누어있지도 않아 왜 이렇게 두껍나, 언제 읽나 싶었다.
근데 읽고 나서는 생각했다. 아, 이래서 나누지 않은 거구나..
정말로 나눌 필요가 없었다.
이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 양이 무색할 정도로 술술 넘어갔다.
이 책을 읽을 때의 그 몰입감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중에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책의 주인공인 나가미네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딸인 에마를 아무 이유 없이(말그대로 아무이유없이.) 잃고나서 얼마나 슬펐을까...
행복했던 일상을 가차없이 뭉개버린 그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딸인 에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또 그 고통을 생각하면서 나가미네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래서 단순히 그들,을 원망스러워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언젠가 경찰의 추적에 의해 잡혔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년법의 보호 아래, 인권의 보호 아래 형이 계속 내려갈 것이다.
마침내 한 소녀를 아무 이유 없이 죽였다는 죄명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피해자의,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은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마침내 그들,에게가 아닌 자신들에게 그 죄를 씌울 때까지...
그런 결말은 너무 싫었다.
아마 나가미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듯하다.
그래서 그는, 사회가 인권이 있는 범죄자에게 주는 벌이 아닌,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자신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준 대상에게 그 아픔만큼 되갚음을 해주었다.
그 결과, 사회에서는 그를 범죄자,라고 했다.
너무.. 슬펐다. 단지, 그냥 슬펐다.
왜 아무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른 그들에게는 인권이 있고 보호받을 존재라면서 죄를 감해주고,
단지 자신의 딸을 죽인 그들에게 복수를 한 아버지는 단지 살인이라는 죄로 덮어버리는 것일까.
정말로 청소년보호법이 이러라고 만들어진걸까...
결국, 사회의 손에 의해, 방황하는 칼날에 의해 나가미네는 죽었고,
나가미네의 복수에서 벗어난 그들 중 한명은 벌같지도 않은 벌을 받고 끝나 버렸다.
보통은 허무할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냥 머릿속이 텅 빈듯 하면서도 꽉 차버린 느낌이었다.
이 책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너무나 많이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현재 사회의 정의로운 칼날은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칼날의 끝은 지금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서, 빨리 제대로 된 방향으로 칼날이 섰으면...
아니, 칼날이 필요없는 사회가 왔으면 하고 부질없는 바람을 실어본다.
어쩌면, 이런 내 소망이 이뤄질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