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박철화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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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있음)

대략 20여년 쯤에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 같다. 그 때의 충격과 공포이란... 읽고 난 뒤에는 약간 두렵고 불편한 느낌마저 들어, 그 이후로 이 작가의 작품을 더는 읽지 않았다. 너무 읽고 싶은데 무서워서 읽을 수가 없는 상태랄까.. 그러나 작가의 이름은 절대 잊지 않았다. 아멜리 노통브.

그러다 이번에 문학세계사에서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출판된 이 책을 만났다. 과거의 그 느낌이 되살아날지 기대하며 첫 페이지를 넘겼고, 다 읽는 지금 나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이 책은 제롬과 텍스토르 둘 간의 대화로만 이어진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제롬에게 낯선 남자 텍스토르가 접근하여 말을 건다. 텍스토르는 일상적인 소재로 대화를 시작하고 그마저도 귀찮은 제롬은 어떻게든 그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이유인지 제롬을 따라다니며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고, 제롬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텍스토르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제롬의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제롬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비밀을 꺼낸다. 스스로를 속여가며 감춰두었던 끔찍한 비밀. 그리고 이어지는 완전한 파멸.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어지는 반전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지만, 그 어떤 전쟁터보다 잔인하고 끔찍하다. 텍스토르의 말들은 허공을 떠다니는 껍데기 같다가도, 반박할 수 없도록 정곡을 찌르기도 하는 느낌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상황, 이야기인데 쉴새없이 쏟아지는 텍스토르의 현란한 말들이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 안에는 남들은 모르는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을. 그러고 보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의 정신분열, 이중자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누구나 자신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진짜 나는 과연 누구일까.

끝내 부정하고 싶은 나의 자아가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결국은 나를 파괴시키는 이야기. 연극으로 올리기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 실제로도 연극으로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관람할수 있기를. 충격적인 전개로 놀라움을 주는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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