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번 출간 기념 리커버 컬렉션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그러나 1억 명의 사망자가 과연 무슨 의미란 말인가? 전쟁을 할때 사망자 한 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거의 잊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망자는 죽은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만 실감이 나는 법이어서, 오랜 역사에 걸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1억 명의 죽음이란 상상 속에서는 한줄기 연기에 불과할 뿐이다.

의사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유리창 저쪽에는 신선한 봄하늘이 있었고, 이쪽 방안에는 ‘페스트‘라는 단어가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법률에 규정된 조치가 심각한가 심각하지 않은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리가 힘주어 말했다. "문제는 시민의 절반이 사망하는 일을 막는 데 그 조치가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 밖의 것은 행정적인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제도에 도지사가 있는 것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리샤르는 주저하다가 리외를 바라보았다.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해주시죠. 이 병이 페스트라고 확신하시나요?"
"문제를 잘못 제기하셨습니다. 이건 용어 문제가 아니라 시간 문제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생각은 결국 이것이 페스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페스트 발생시와 동일한 예방 조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군요."도지사가 말했다.
"제 의견이 꼭 필요하시다면, 그것이 바로 제 의견입니다."
의사들이 의견을 주고받았고, 마침내 리샤르가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병이 페스트인 것처럼 대응하는 데 대한 책임을 져야겠군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까지 시민들은 이 이상한 사건 때문에 놀라고 불안해하기는 했지만 평소 하던 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맡은 일을 그대로 했고, 아마계속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출입문이 봉쇄되자, 서술자를 포함해 모든 시민들이 똑같은 난관에 봉착했으며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과의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이 초반 몇 주부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이 되었고, 그 오랜 유배 기간 동안 공포심과 더불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된 감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별 도리 없이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도청의 결정사항이 공표되기 몇 시간 전에 도시는 이미 폐쇄되었고, 당연한 일이지만 개인사정을 참작할 수는 없었다. 그 질병이 갑자기 유행하면서 생겨난 첫결과로, 우리 시민들은 마치 개인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행동하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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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대학생 2022-09-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눈앞에 현상에 집중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