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역
양영제 지음 / 바른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곳이든 언뜩 떠 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강릉은 시원한 바닷가, 밀양은 영화 밀양의 주연배우 전도연, 광주는 5.18 묘역 이렇게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 여수는 이미지 보다는 혀를 자극하는 곳이었다. 간게장....서대회.... 장어탕... 흐흐 여수에서 이런 거  먹어보지 않고서는 여수를 갔다왔다고 하면 안 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배가 불러야 바다를 보든지 경치를 감상하든지 할 게 아닌가. 우린 순전히 먹으려고 여수행 기차에 올라탔다. 근데 솔직히 좀 멀다. 당일코스로는 버거운 곳이라 찜질방에서 자기로 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그리곤 소설 여수역을 펼쳤다. 그냥 여수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여수라는 도시를 서정적으로 그려놓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다. 기차타고 가는 오가는 동안 가볍게 읽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읽다가 그만 덮어버리려고 했다. 괜히 책을 구입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왜냐면 모처럼 먼 바닷가에 재미있게, 맛있게 놀러가려고 하는데 무섭고, 흉폭하고, 상을 찡그리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여수 순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 줄은 정말 몰랐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그냥 한줄 정도 옛날에 무슨 사건이 있었다고만 배웠지 그게 그렇게 큰 사건이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전체를 뒤덮고 있는 그림자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다 다시 책을 펼쳤다. 왠지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소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짧은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  농축되어 있는 의미들을 곰곰히 씹어가며 음미하기에는 지식이 딸렸지만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어렴픗하게 내 머리 속을 파고들어왔다. 

 

 전쟁 이후  시대 여수에서 태어나 자라난 윤훈주와 여순반란사건을 겪은 아버지 윤호관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년 광화문 촛불집회와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박근혜로 이어지는 검은 그림자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우리 국민을 조종해 왔는지는 책을 읽으면서 금방 알아차리게 하였다. 그리고 슬펐다. 소설에서 처럼 기차가 순천을 지나 여수를 향할 때 쯤 다 읽어냈는데 그때부터 슬펐다.

 

 여수역에 도착했었다.

다른 친구들은 신난다고 들떠 있었지만 나는 소설 속에 주인공 윤훈주처럼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수역이 옛날에는 그렇게 생겼겠구나 하고 혼자 그림을 그려 보았다.  여수역 광장에 서서 연탄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를 기다리며 동생을 업고 혼자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는 홍양숙이 모습도 그려 보았다. 슬펐다.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슬픔을 나 혼자 느끼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내가 왜 아름다운 슬픔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래도 아름다움 슬픔은 예약된 맛집인 횟집인가? 어딘가? 무슨 회관이라고 했는데 일인당 삼만 원 짜리 시켰는데 와! 따봉! 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구워놓은 것이 제일 맛있었다. 먹고 있는 동안 슬픔은 잊어버렸다.

    

  근데 내가 독후감 쓰고 있는지 식후감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렇다. 여수 갔다와서 생각나서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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