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 맘 - 2012 이주홍문학상 수상도서, 2012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
조명숙 지음 / 산지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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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생각났다. 

수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의 세계와 조명숙의 세계는 닮았다. 
"사람은 냉정한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너무도 투명한 시선이 말이다. 

어쩌다 
태어나보니 이미 세상이란 것이 만들어져 있었고, 
나는 밥을 먹듯, 세상을 위장 속에 채우고 살아왔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세상을 살아가려면 세상의 법칙을 내 몸에 새겨야만 한다. 
내가 아무리 위대하고 혁명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살아가려면 바퀴벌레라도 먹어야 하는 것이 법칙이다. 
세상의 법칙에 선악이란 없다. 

불구로 태어났으면 불구인 채로, 
못난 엄마 밑에 태어났으면 그런 대로, 
평범하게 태어났으면 평범한 대로, 
가난하게 태어났으면 가난한 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 아무리 젋고 씩씩하고 혁신적인 생각이라도, 그것은 고작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한 시간쯤 쉬지 않고 탭댄스를 춰본다든지, 
버스정류장에서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청해본다든지" (「거꾸로 가는 버스」) 
하는 단 한번 일탈에 불과할 때가 많다.
나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위대함은 사실 너무 힘겨운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현실의 뾰족한 침이 살을 파고들어 피를 흘리게 하는 대로, 그런 채로 살아간다.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삶이다. 거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수식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답이 없다. 
뾰족한 침을 피하려고 몸을 웅크리거나 
뾰족한 침이 아니라 폭신폭신한 솜방망이가 나를 간지럽히도록 기다려야 한다. 
좀더 적극적인 인간이라면, 뾰족한 침에 헝겊을 씌우는 시도는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저마다 현실에 복종하느라, 한가지씩 익힌 습관 같은 것이 있다. 
벨트 버클을 히스테릭하게 반복적으로  잠갔다 풀었다 한다던가 
평생 호루라기를 분다던가 
자식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던가 
그런 것들. 

이 인물들이 다 비정상처럼 보이지만, 
이 작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도 비정상일 것이다. 
현실에 순응하느라, 나도 모르게 익힌 습관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분명. 

카프카가 그렇듯, 조명숙도 연민 같은 감정은 결코 내보이지 않는다. 
소설의 인물들은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지 않는다. 부모의 죽음이라도.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홀가분함이 이 인물들을 지배한다. 
너 같은 인간 사라져버려서, 이제 귀찮을 일이 없겠어.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애도하지 않는다.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죽게 되어서 홀가분해 한다. 
이제야 죽게 되다니, 홀가분해.  
이 지긋지긋한 세상이여, 안녕!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만들어져있던 세상. 
최대한 덜 아프게, 잘먹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까지 편안해진다면 좋겠지만, 양심상 그건 옵션으로 남겨둘게.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세상살이가 꼭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을 묘사하는 조명숙의 글쓰기는 부드러우면서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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