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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내 손목시계에서 흘러가는 나의 시간. 내 앞에 마주보고 있는 저 녀석의 시간, 다른 어느곳에서 살아갈 누군가의 시간. 이렇게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또 모두에게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에 각자가 갖고있는 시간은 각자의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만을 바라는 독일 군인의 시간이 인간 사랑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면 러시아 병사 이반이 갖고있는 시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나 역시 같은 소설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기에 지금의 나는 어떤 시간을 갖고 있는지 찾고 싶었다. 결국 두번을 읽고 나서야 나 역시 미시아와 같은 고뇌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함을 갖고 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현실이고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라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남동생 이즈도르가 새로운 시간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의 시간은 사랑과 불안함과 공포가 뒤섞인 변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와 갱생의 궤도가 끊임없이 순환하며 만들어지는 구조라는 것이 기쁠 따름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 시간도 조금이나마 가치있는 것이 아닐까.
올가 토카르축이 그녀의 시간을 통해 만든 태고 마을에서 겪은 수많은 인물들의 시간, 하다못해 커피 그라인더의 시간마저도 나에게는 되새겨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본문 내용처럼 "상상이란 따지고 보면 창작의 일부이며 물질과 영혼을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와 같다"는 작가의 말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영혼에게 주어진 시간을 뭔가 의미있게 보내야 하는 것 말고 우리가 해야할 일이 또 뭐가 있을까. 그리고 무의미하던 나에게 이런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해준 <태고의 시간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책을 두번 읽고 밖으로 나와 걷다가 지나치던 공원에서 은행나무 잎을 하나 주워서 책갈피에 끼웠다. 그 은행나무 잎의 시간은 이제 책 안에서 함께 흐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