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빛의 제국>은 거짓으로 둘러싼 삶에 대해 질문한다.
남파간첩 김기영/김성훈의 진짜 삶은 무엇일까? 김기영일까? 김성훈일까? 아니면 김기영과 김성훈 둘다로 살아온 10여년일까? 80년대의 남한과는 전혀다른 세계인 오늘의 남한에서 자본주의가 베풀어준 권태와 불안, 부도덕에 찌들어 사는 386들에게 진짜 삶은 그들이 80년대에 꿈꾸었던 혁명인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답답하고 비윤리적인 중년의 삶일까.
그러나 <빛의 제국>은 진정한 삶 따윈 없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유일한 '진리'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끝부분에서 써치라이트 쑈(빛의 제국)를 하며 북한 잠수정을 돌려보낼 때 기영은 자신의 젊은 날을 생각한다.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씻지도 못하고, 긴강감에 속이 울렁거리는 가운데서도 인간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된 인간들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었던 자신의 삶의 태도.
기영의 젊은 날의 그러한 삶의 태도는 소설의 중요한 조연인 그의 딸에게 이어진다. 한 번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진 친구를 감싸않으며, 외로움에 지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낸 남자친구를 구해내리라 굳게 결심하는 그의 딸의 모습은 기영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
그러나 긍정은 작고, 불안은 너무나 크기만 하다. 모든 진실을 알게된 기영과 그의 아내에게 삶은 이제 지옥처럼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들의 딸은 자신의 꿈을 과연 이룰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