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해 이순신 - 너라야 세상을 화평케 하리라
김종대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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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엄하고 진중해 위풍이 있는 한편 남을 사랑하고 선비에게 겸손하며 은혜와 신의가 분명하고

식견과 도량이 깊으며 기쁨과 노여움을 잘 나타내지 않았다.

 

일찍이 하는 말이 " 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힘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말아도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 있는 자에게 아첨해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나의 부끄러워하는 바라. "

 

스스로 신념을 지키고 아첨하지 않는 것을 평생의 일관된 신조로 삼았기에 그는 반생을 불우하게 지냈으며 세상에서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난리를 만나 뛰너난 전공을 세워 임금과 조정 신료, 백성들을 감동시켰음에도 속인들로부터 모함을 당하고 옥에 갇히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공은 지혜를 내고 일을 지휘함에 있어 한 가지 실수도 없었고 또 용기를 분발하고 기회를 결단하기만 하면 그의 앞에는 강한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평소의 수양이 밑받침된 것이었으리라.

 

충무공은 왕이 삼고초려해 군사 혹은 승상으로 모시고 받드는 복된 환경에서 적과 싸운 사람이 아니다. 개인적인 허물을 감싸주고 힘껏 싸우도록 온 나라가 보필하는 가운데 적과 싸운 사람도 아니다. 그는 왕이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죽이려고까지 했던 기막힌 상황 속에서도 한번 세운 충을 굽히지 않았다. 왕과 그를 모함하는 세력들이 자신을 파면하고, 투옥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그들을 원망한 일이 없었고, 그들 때문에 자신이 수년을 두고 일궈온 수백 척 전함이 모두 부서져 바다 속으로 던져지고 겨우 열두 척만이 남아도, 또 자신이 가꿔낸 수만의 수군이 몰살되고 기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원망과 격분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싸울 전선과 병사들을 모조리 없애놓고 그 열 배, 백 배가 넘는 적의 수군과 싸우라며 뻔뻔스러운 재임명의 교서를 내려도 공은 불평은커녕 배가 열두 척이나 남아 있으니 괜찮다며 담담히 그 명을 받들었다.

 

이순신이야말로 진정으로 훌륭한 공직자의 표상을 구현하고,

후손에게 길이 그 진면목을 전해주어야 할 우리 민족의 참스승이라고 믿는다.

 

<서경>에 따르면, 순舜임금이 여러 신하 가운데 우禹 임금을 지적하며 " 오직 너라야 세상이 화평케 되라라."라고 한 데서 여해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마치 이순신이 그 이름대로 순임금의 신하인 우임금처럼 나라를 구해 화평케 할 운명임을 암시해놓은 듯하다.

 

위대한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우수한 공부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안목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비범한 통찰력이다. 거기에 목표 설정을 뚜렷이 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이순신의 이야기를 살피다가 보면 그의 '결단의 간결함'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옳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실행에 옮겼고, 그 과정에서 맞닥뜨릴 문제점이나 결과가 미칠 영향 등에 관해서는 복잡하게 생각해 머뭇거리는 바가 전혀 없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을 지녔을 뿐 아니라 아무리 복잡한 상황도 단순화시켜 볼 줄 알았기 때문이리라.

 

이순신의 리더십을 이야기 할 때 누구도 유비무환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순신은 일이 있기 전에 반드시 철저히 준비해 실패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준비를 철저히 하려면 우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예측한 다음에는 그에 맞추어 실제로 준비를 해야 한다. 이순신은 이미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측해 군사를 훈현하고 방어기지를 보완했으며, 군량미를 보충하고 거북선이라는 특수 전함도 준비해두었다.

 

이순신은 도망치는 적들을 끝까지 추격하지는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빠진 적들을 너무 심히 윽박지르다가는 도리어 돌아서서 산골에 피난해 있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해를 입히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한산도 생활에서 매우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 중의 하나는 고생하는 장병들을 배불리 먹여 사기를 돋우는 일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그의 일기에 나온 것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순신의 부하 사랑은 남달랐다. 성공한 지도자들은 대개 부하들을 감동시켜 움직이게 함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했다.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랫사람들이 움직여주어야 한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일의 성공 여부 역시 사람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경솔히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설사 왕명을 거역한 죄로 자신이 죽는 다 해도 적의 꾐에 넘어가 소중하게 길러놓은 수군을 몰살시키지 않는 쪽을 택했다. 재임명되어 1만 수군이 400여척의 배로 12척의 배를 삼키려 할 때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전선이 너무 빈약하니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와 막으라고 명령했다. 이때 이순신은 천하의 명언 한 마디를 남긴다.

 

아직도 신에게는 열 두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아직도 할 수 있습니다.
전선이야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후 조정의 수군 폐지론이 잠잠해졌다.

 

이순신은 숨을 거두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단 말을 내지 마라. "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건 누구에게나 자신이 걸어온 삶의 마지막 모습이다.

삶이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만은 자신의 참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기 마련이다.

 

일본에서 최고의 명장이요 군신으로 일컬어지는 도고 헤어하치로 제독이 러일전쟁 승전을 축하하는 피로연에서, 자신을 영국의 넬슨과 조선의 이순신에게 비켜 칭송하는 축사를 듣고 이렇게 답했다.

" 나를 넬슨에게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

그는 이순신을 일컬어 동서양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절세의 대영웅임을 인정했다.

또한 도쿠토미의 <근세일본국민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 그는 실로 조선의 영웅일 뿐 아니라 동양삼국을 통틀어 최고의 영웅이었다.

 

이같이 이순신은 추구하는 가치의 경중에 대해 확고한 정리와 정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이순신 역시 자신의 천명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것을 알고도 끝까지 하늘에 맹세한 자신의 기도와 애국심을 노량앞바다에 원 없이 펼쳐 보임으로써 당당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평생을 올곧게 살아온 그의 인품에는 운명과의 타협도 용납되지 않았다. 하늘도 이순신의 목숨은 거둬갈지언정 그의 절개와 신념을 꺽을 수는 없었다.

 

세계는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한다!

열두 척의 전선으로 133척에 맞서 이기고,

스물세 번 전투에 나아가 스물세 번 모두 승리했으며,

최후의 전투에서는 죽어서도 살아나 적을 물리친 이순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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