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두 얼굴
폴 존슨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 저자가 바치는 ‘감사의 말’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일부 주요 지성인들의 도덕적 판단적 신뢰도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는 데 교훈을 얻고자 하는 목적을 지녔다.”

-

처음부터 저술의 목적을 언명한 바대로, 저자는 소위 ‘지식인’이라 불리우며 진리의 상아탑 위에서 휘황찬란하게 명성을 떨쳤던(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위용을 떨치고 있는) 인간들의 전기를 샅샅이 훑어간다. ‘지식인’들의 삶과 그들이 주창하던 이론이 얼마나 모순적이었는지를 꼬집으면서 ‘행하지 않는 앎’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수한 각주를 달아가면서 여러 전기들을 오가는 저자의 눈길은 집요하리만큼 끈질긴데, 타깃으로 삼은 인물 뿐만 아니라 당시 사교계와 지적 담론장에서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주변인들의 삶도 세밀하게 엮어가며 ‘지식인’이 (얼마나 운좋게) 만들어진 존재인지, 그들의 삶이 (주변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 몰아넣으며) 얼마나 행운 속에서 빛 발하였는지를 낱낱이 까발린다.

진실의 거울 앞에 불려나온 지식인들은 13명이 넘는데,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장자크 루소와 ‘공산당선언’의 카를 마르크스, ‘인형의 집’ 저자인 헨릭 입센, 톨스토이, 헤밍웨이, 브레히트, 러셀, 사르트르, 조지오웰 등등 모두 지금도 여기저기서 콧방귀 쫌 뀌고 다니는 사상가와 저자들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삶에 대한 저자의 싸늘한 눈빛과 비수처럼 꽂히는 문장들이 유명 잡지의 가십기사처럼 신랄해서 읽는 묘미를 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1750년에 벌어진 이 일은 루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불현듯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중략)...이것은 세상의 주목과 명성을 갈망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오던 서른아홉의 사내가 마침내 한몫 제대로 잡은 사건이었다. 논리가 빈약한 이 논문은 오늘날에는 거의 읽어볼 가치가 없다.” - <장 자크 루소, 위대한 정신병자> 19~20쪽

“루소가 자신은 저열한 감정들을 느끼지 못한다고 믿은 것도 자만심의 일부였다. ...(중략).. 사실 그는 자주 원한을 품었고, 상대방을 몰아 붙일 떄는 교활한 짓도 자주 했다. 사람들도 그것을 알았다. 루소는 자신이 전 인류의 친구라고 거듭해서 공표한 최초의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보편적인 인류는 살아하면서도, 개별적인 인간과는 다툼을 벌이는 성향을 강하게 키웠다. 그의 옛 친구이자 희생자 중 한 사람인 제네바의 트롱솅 박사는 “인류의 친구가 더 이상 주변 사람의 친구가 아닌 상황은 어떻게 가능한가?”하고 항의했다. 루소는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을 비난하는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 <장 자크 루소, 위대한 정신병자> 26쪽

이 얼마나 신랄한지. 구비구비 이어지는 풍자 속에서 시니컬하게 톡톡 튀는 유머 코드가 숨어있어 익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관되게 지식인들의 모순된 삶을 비판하는 저자의 태도가 흡사 돌아선 안티팬의 삐뚤어진 집착처럼 진지해서 처음에는 웃기게 여겨지다가도 숙연해진다. 결국 이 책이 ‘지식인의 두 얼굴’이라는 표제를 달고 말하고 싶은 바는 “인간이 관념보다 중요하고 인간이 관념의 앞자리에 놓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만”한다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