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동에서 그나마 똑똑한 아이로, 취급받던 나는 전민동에 오자 멍청한 아이가 되었다. 달라지는 시도 예측이 정확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얼마나 많은 냄비를 써봐야 어느 냄비를 쓰든 라면 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문제를 풀어봐야 어떤 선생이든 무슨 문제를 발지 알아맞힐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꽃을 키워봐야. 얼마나 많이꽃을 죽여봐야. 다짐을 더 자주 다지는 것밖에는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다짐에 골몰했다.
소영의 예측 방식은 달랐다. 내 방식이 먼 곳에 놓인 돌멩이를보려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의 방식이 쥐고 있는 돌멩이를 꾸준히 쥐고 있는 거라면, 소영은 돌멩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둑을 두는 방식이었다. 현실에 두는 돌 하나로 미래의 돌의 위치를바꿔놓았다. 소영의 곁에서 나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미래가 현실을 향해 마구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했다. 막연한 단어로만 꺼내보았던 미래가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영은현실이라는 그물로 미래를 포획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제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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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 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없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리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랜드 피아니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고 패브릭 소파와 소파스툴, 원)장과 몬스테라 화분은 둘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거실을 통해소파와 소파스툴, 원목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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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봐요. 나랑 자고 싶었죠?"
"지유씨는 아니었나봐요?"
"전, 반반?"
뭐 이런 게 다 있지.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뭐 이런 게 다 있지.
"아무래도, 자려는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그러니까, 꼭 잘 필요가 있나, 그런 거죠."
"네?"
"자면 뭐 해요. 어차피 자고 나면 다 똑같잖아요. 지훈씨도 그걸모르지 않잖아요."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자기가 어떻게 알아. 이 여자는 왜 이 이렇게까지 확신을 하는 거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잤는지 안 잤는지보다는, 자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 자체가 중요한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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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별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재밌지. 여행을 와서 그런가. 기대 이상으로 완벽한 첫날이었다. 나는 나의 방, 그러니까 지유씨의 바로 옆방에서 모로 누워 지유씨를 생각했다. 나는 스물셋이 아닌 서른셋이었으므로, 가장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줄 알았고, 그래야만했다. 황금연휴의 첫날일 뿐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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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Tempus Fugit Amor Manet).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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