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대폭발 1 나남창작선
로재성 지음 / 나남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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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작가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생각했다. 사실 백두산은 낯선 존재도 아니었고 폭발설 또한 오래 들어온 식상한 이야기 아닌가.

  소설의 첫 대목에 미국 첩보위성이 찍은 <김일성 동상>이 옮겨가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신선한 접근법에 무척 호감이 갔다. 그 다음 장면에 소설의 무대가 천 년 전에 사라진 나라 <발해>가 등장하고 백두산이 터지는 CG가 등장하고 주인공의 얼굴이 소비자의 얼굴로 바뀐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절로 터졌다.

  그만큼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이 터지는 재난소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힘든 것이었다. 작가는 이미 철저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처음부터 백두산 폭발설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폭발설을 부인하다가 오히려 부추기는 중국정부, 폭발설을 이용해 돈에 광분한 여행사들, 터지기 전에 백두산으로 몰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 화산폭발 종말론에 말려든 광신자들, 무엇보다 백두산을 개발한 백두개발 소유주 황우반이 한국인 수만 명에게 여행권을 제공하고, 그의 이종사촌인 김태일이 데스 카니발이라는 해괴한 스포츠 대회를 벌인다는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백두산 폭발 이전에 다양한 욕망을 가진 인간군들이 대거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무대를 펼쳐놓고 있었다. 마치 유황불에 사라지고 마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를 보는 듯했다.

  이야기는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북한의 이상동향을 추적하러 투입된 국정원 대북정보요원들이 백두산에 들어가 비밀공작을 벌인다. 북한의 지진학자 이수근은 한국망명을 시도하며 북한 공작원들에게 계속 쫓긴다. 그의 부름으로 열혈기자 오수지와 의문사 당한 화산학자의 아들 임준은 야간에 백두산 정상에서 만남을 시도하고 쫓고 쫓기는 추적전이 펼쳐진다.

  스토리는 더더욱 뒤얽히고 긴장감은 높아간다. 2016년 4월에 펼쳐질 총선판을 뒤엎으려는 한국의 집권층, 마침내 마각을 드러낸 북한 공작원과 북한 지진학자의 조우, 백두산이 터질 것을 미리 안 북한 집권층은 대남 기습전을 준비하고 남녀 주인공은 가까스로 달아난다.

  이야기는 계속 뒤집힌다. 북한 공작원 짓인 줄 알았던 연쇄살인범은 한국 정치인의 사주를 받은 한국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 장교였다. 탈북자를 돕는줄로만 알았던 전직 정보기관원 김민수는 재벌2세 황우반의 사냥개로 마각을 드러낸다.

  백두개발 회장 황우반은 멋들어진 악인으로 등장한다. 컬럼비아 법과대학원을 나와 미국변호사를 하던 그는 백두산을 개발한 아버지를 극도로 미워한다. 그의 어머니를 자살로 몰아갔고 외가의 돈을 뺏아간 피 한 방울 안 섞인 원수라고 생각한다. 그룹 재산 대부분은 아버지의 동생과 갑자기 나타난 이복형제에게 돌아가자 그의 증오심은 깊어진다. 그는 이종사촌 김태일과 데스 카니발을 준비하며 한국인 3만 명을 몽땅 죽이려 든다. 그래야 그룹의 지주회사인 생명보험회사가 망하고 그룹 전체를 차지하려는 그의 계략이 성공하기 때문이다.

  동계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열리는 백두산에서 마침내 화산폭발이 일어난다. 황우반의 음모로 겨울관광도시 발해의 탈출로는 봉쇄되고 도시 속에 수만 명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중국 동북3성과 북한 동북부는 생지옥이 된다. 한국과 북한 집권층은 서로를 기만하며 치열하게 대립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비밀회담을 위해 김정은을 백두산 별장으로 불러들이더니 백두산이 폭발하자 전자펄스탄을 터뜨려 지하벙커에 고립시킨다. 일본 방위청은 중국의 짓임을 폭로해 중국과 북한을 갈라놓는다. 영변 핵단지까지 붕괴되자 북한 전체는 생지옥이 된다.

  마침내 북한 지도층은 휴전선을 개방해 수백 만 명의 난민들을 남한으로 내려보낸다. 대지진으로 수만 채의 건물이 무너진 수도권은 소양강댐 붕괴로 물바다가 된다. 방사능 낙진과 결합된 화산재가 남한과 일본을 공략한다. 북한 군부의 강경파의 주도로 북한 특수부대 2만 명이 서울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한반도는 파국으로 내몰린다.....

  백두개발 회장 황우반과 연극배우 임준이 화산이 폭발하는 백두산 속에서 격렬하게 대결한다. 친한 친구사이였던 그들의 아버지들에겐 복잡한 과거가 나타난다. 엄청난 부를 추구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배반한 황우반의 부친, 그 여인을 받아 아내로 삼은 임준의 부친, 황우반 아버지의 실제 아들은 임준임이 드러나고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은 임준을 죽여 재산을 가로채려는 황우반. 두 남자는 용암 속으로 사라진다.

  주인공 오수지는 북한 고아를 데리고 불타는 도시 발해시에서 마지막 탈출을 기도한다. 온갖 시련 끝에 지하 배수관을 통해 백두산 외곽으로 달아나나 사악한 한국스파이에 의해 다시 죽음으로 내몰린다.....

  소설은 숨 막힐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고 반전이 연속으로 벌어지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작가는 백두산 폭발에 대한 정교한 과학적 시나리오를 등장시키는데 그 전문성은 웬만한 화산학자도 뺨을 맞고갈 수준이다. 등장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히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단연 압권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가 터무니없는 리뷰를 읽고 나서였다. 이상한 닉네임을 가진 자가 이 소설을 형편없이 폄훼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책도 몇 권 읽지 않은 것 같은 자가 파워블로거를 자처하며 수준 낮은 평을 하는 것을 보고 절로 혀를 차게 됐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파워 블로거가 아닌가.

  <백두산 대폭발>은 정말 제대로 된 재난스릴러 소설이다. 전문성과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한 좋은 작가이다. 작가는 오랜 세월 습작과 무명의 고통을 받으며 어렵게 글을 쓴 것 같다. 작가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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