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불편한 진실
오로지 지음 / 눈솔시나브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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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출간된 아직 따끈따끈한 신간인 오로지선생의 “정신의학의 불편한 진실 “,
미국 사이트에는 파는 곳이 없어 기다렸는데 한국에서 다니러온 시동생한테 부탁해 한권 입수했다. 책을 잡기 시작하자 놓을 수가 없어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오로지선생은 “한국의 GMO 재앙을 보고 통곡하다” 와 “백신주의보”를 쓴 저자이다.

제목만 보아도 주제를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마도 디테일은 내 상상을 가뿐히 초월할 것이라고 나름 추측했었다. 역시나 내 알량한 현실 인식과 상상력의 한계를 처참하게 부숴버리는 내용이다.

1960년대부터 주류정신의학의 방향이 프로이드식 접근방법에서 화학적 불균형설로 옮겨가게 된다. 즉 상담과 심리치료가 주를 이뤘던 정신치료가 약물로 가게 되었다는 것. 제약회사의 입맛에 너무나 제대로 맞춘 방향이다. 이후로는 지금까지 주류정신의학계와 제약자본의 콜라보가 끝없이 뻔뻔해지고 돈벌이에 불과한 약팔이가 과학의 탈을 쓰고 당당하게 정신의학계를 주무르게 되었다.

두통을 치료하려고 먹은 약이 두통을 더 심하게 하면 그 약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간을 보호해준다고 믿은 약이 오히려 간세포를 파괴한다면? 그런데 바로 그런 일이 항정신성 의약품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정신과 병동의 침상수가 증가할수록, 정신과 치료에 돈을 많이 쓸수록 자살률이 높아진다면??
게다가 중독성까지 심각해 정신과 약물을 끊는 것이 헤로인을 끊는 것보다 50배는 어렵다고 하니…! 헤로인을 팔거나 사면 감옥에 가지만, 항정신성 약을 팔아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이들은 부에 부속물로 따라오는 권력까지 쥐게 된다. 학계는 물론 정부와 의회와 언론도 장악해서, 바른 말하는 학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관계기관은 그들에게 이로운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언론은 약물의 효과를 과대 포장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로비는 타 기업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1위이다. 두번째인 Electronics Manufacturing & Equipment 에서 쓴 로비자금의 두배도 더 된다. 여섯번째와 일곱번째를 차지한 Hospitals/Nursing homes 와 Health Care Services 를 합하면 의료계의 로비자금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어느 분야이건 자본에 잠식당하지 않은 데가 있으랴만 의료계는 철저하게 거대 제약사에게 장악되었다. 그중에서도 정신의학 분야는 특히 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혈압이나 당수치, 콜레스테롤이나 간수치 처럼 정신을 측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특성 때문이다.

정신의학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하버드 의대의 피터브레긴교수는 당신이 할 가장 위험한 일은 정신과의사를 만나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정신 나간 이상한 사람의 횡설수설이 아니라 하버드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의 말이다. 조직적인 왕따와 박해에도 옳은 길을 가는 극소수의 의로운 이들이 목소리를 내서 그나마 조금씩 이라도 진실이 드러나고 나같은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의사나 병원을 찾으면 내원자는 정신건강상태를 측정(?)하는 표준화된 질문지를 받게된다. Patient Health Questionaaire 9(PHQ-9)라고 불리는 양식인데, 내원자의 정신 건강을 이렇게 저렇게 물어서 웬만하면 한두개항은 해당사항이 있도록 되어있다. 모든 이들이 잠정적 정신질환자이다. 저 깊고깊은 무의식 세계에 꽁꽁 숨겨진 정신상태까지 끄집어내서 해결 해준다니 이 아니 멋진 신세계인가!
어떤 질문에든 예스를 표시하면 경미한 우울증에서 심각한 우울증까지 환자 딱지를 달게 된다. 다음 수순은 일단 저용량의 anti depressant 처방이다. 약물에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환자는 고용량 또는 여러가지 칵테일의 항정신성 약물 실험장이 되기도 한다.

나의 시어머니는 오십대에 집안의 자랑이자 기둥이었던 맏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그 참혹했던 시간들을 어찌어찌 견디시며 새로운 생명들인 손자들에게 정 붙이고 사셨다.
고혈압이 있으셔서 병원출입이 잦으셨고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셨다. 87세 생신을 몇달 앞두고 동맥류(Aneurysm) 수술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후에야 우리는 어머니가 30년동안 우울증약을 복용하셨다는걸 알았다. 아마도 위의 질문지에 몇개는 체크마크를 했으리라.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시면 아버님은 언제나 정원기구를 들고 뒷마당으로 가셔서 정원일을 하셨는데 어머니는 나와 몇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후에는 소파에 누워 주무셨다. 말년에는 말씀을 거의 안하셨고 종종 아무 일도 아닌데 화를 내셨다. 우울증 약을 30년간 복용하신걸 알고나서는 어머님의 말년의 변화를 이해하게 됐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실연을 당하거나 사업이 뜻대로 안되거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대인관계가 일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직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는 일들은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슬픔과 비탄, 상실감과 배신감, 분노와 절망을 “병”으로 “진단”하고 화학적 개입을 하는게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그래서 슬픔도 분노도 못느끼면 좋기만 할까? 사랑과 기쁨과 감사와 행복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되는가? 선택적으로 긍정적인 기분은 남기고 부정적인 감정만 골라 없애는 기적의 약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터, 우리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제거당한 좀비로 살기를 원하나?

슬프고 괴롭고 우울하면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고 햇볕 아래 걷고 친구 만나 읏고 얘기하고 그래도 안되면 차라리 몸부림치고 울어버리면 어떨까, 우리에게는 시간과 망각이라는 대단한 방어기제가 있지않은가! 부작용 쩔고 중독성 있어 평생 먹어야하는 약 따위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먹는 약을 팔 꿈에 젖어있는 제약회사 너님이나 맘껏 드시라 하고.

시골장터의 약장수나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화려한 경력의 전문가(?)들로 에워싸인 제약회사나 “약장수”란 면에서는 다를게 1도 없다. 이래저래 소비자가 똑똑해져야 하는 피곤하고 짜증나는 세상이다. 약장수를 비롯해 모든 상거래는 일단 의심의 눈초리를 번득여야함은 물론 의사도 정부도 믿을 수가 없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6만명을 사망케한 바이옥스진통제를 만든 머크사가 60억달러의 벌금을 물었는데 그 CEO는 엄청난 퇴직금을 받고 물러나 몇달후 FDA 의 고문으로 취임하는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우리 자랄 때 많이 들었던 표어가 새삼 생각난다.

“약 좋다고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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