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한 때 소설을 써보리라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작가의 말마따나 빈둥거리며 TV를 보고 웹서핑을 즐기다가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때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소설책들을 뒤적거려 보곤,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싶어 무턱대고 자판기를 두드리다가도, 미처 A4용지 한 장도 채우기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모든 의욕을 상실하기를 여러 차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과 내가 갈겨 놓은 잡문들을 비교해 보고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음을 깨닫고는(물론 나는 살리에리와 비교당하는 것조차도 감지덕지해야할 범인에 불과하다) 새삼 폭풍 감정이입하여 책을 내던지고 한 숨을 내쉬기 또한 여러 차례. 하여간 이런 저런 이유들로 꿈은 저 구석으로 미뤄 놓은 채 하루하루 나이만 먹어가고 있다.

 

심재천의 단편집 <본심>은 작가 자신이 등단하기 전에 응모했다 떨어진 작품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수준 높은 진지한 문학작품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서는 아니 된다. 세상에는 작가들이 수없이 많고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들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작품들의 수준도 천차만별, 노벨상 정도 받아보지 않은 작가의 소설은 이미 수준 높은 독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어디 가서 책 좀 읽는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이 책보다는 차라리 심재천의 등단작 <나의 토익 만점수기>를 읽는 편이 낫겠다(아니다, 벌써 읽으셨을라나?). 뭐, 남들이 읽는 책뿐만 아니라 남들이 읽지 않는 책들도 읽지 않으면 못 배기는 분이라면 읽어 보시는 것도 무방하시겠다.

 

여하튼, 나처럼 한 때 소설가의 꿈을 가졌었거나 혹은 현재도 글을 써보겠다고 부질없는 노력을 하고 계실 여러 소설가 지망생 동지 여러분께는 이 책을 권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오답노트로서 ‘이렇게 쓰면 망한다’라는 사실을 콕 집어 가르쳐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의 작품을 가지고 무던히도 심사에서 탈락하던 작가가 결국은 신데렐라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신춘문예 당선자 목록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하고 흘린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차디찬 방구석에 쓰러져 자신을 몰라봐주는 세상을 원망했을 것이 분명한 이 시대의 수많은 구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문학이라면 닥치고 좋아하는, 이제는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든 문학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나의 토익 만점수기>를 읽고 심재천의 팬이 된 사람이라면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어 즐거울 것이고, 작가 자신이 이야기하듯, 옆집에 사는 백수 형이 자기가 쓴 소설이라며 수줍게 건넨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작품의 수준을 떠나 주말 한 때를 킥킥 거리며 제법 흥미롭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 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상실의 시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소설책을 자랑스레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단순히 유행을 따라 혹은 허세를 부리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쯤 이 <본심>을 들고 외출을 해보자. 그리고 같은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을 길거리나 카페에서 발견하거든, 괜히 아는 척은 하지 말고 ‘아직도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존재하는구나.’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수줍게 눈인사를 건네 보도록 하자. 그것으로 족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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