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간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릴적 TV 드라마 <토지>에 나온 서희의 야무지고, 강단있는 모습은 서른이 훌쩍넘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강렬하게 남아있다.  어릴적에는 그 드라마의 원작자가 박경리 작가님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채 온 정신을 놓고 보았더랬다. 

그 박경리 작가가 생전에 쓴 시가 다시 엮여나와 반가움이 앞섰다.  소설만 쓰시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시까지 쓰셨는지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깔끔하게 디자인된 책 겉표지에 생전의 작가 사진이 실려있어 애틋하고 아련하다.

3권의 시집에 발표되었던 시들을 한권에 가려뽑아 낸 시들은 작가와 꼭 닮은 느낌이다.  마치 시가 박경리 작가 그 자체인 듯 한 느낌이다.

시 한편한편에 작가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 누구나 알수있도록 쉽게 담겨져 있다.  

도통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 몇번이고 다시 읽어봐야 하는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의 시들과는 무척이나 다르다. 

삶 그 자체가 그대로 시가 된다.  저녁 어스름에 텃밭에 김을매다 올려다본 하늘에서 인간태초의 외로움을 느끼는 모습, 베개를 겨드랑이 밑에 받치고 팔굽 세워 머리를 손바닥에 얹고 바라보던 창문에서 비져나오는 종말 같은 고요, 아침 일찍부터 고추밭에 물주랴, 닭 모이 주랴, 고양이들 밥 말아주랴, 떨어진 살구알도 주으랴 정신없이 보낸 끝에 조싹조싹 졸면서 아아 내 조반은 누가 하지?’ 하며 내뱉는 한마디는 나이많은 어르신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귀여우셔서 미소가 절로 나는 풍경이다.

어디 그뿐이랴.  살던곳이 갑갑했는지 속초가서 동태장사나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무작정 떠나 도착한 낯선 강릉거리에선 그만 움츠러 들어 아무식당에나 들러 혼자 막국수를 용쓰며 먹다가 시껍해서 돌아와서는 집 앞산머리가 보이자 눈물을 흘려버리고 마는 여리고, 순진무구한 면이 생생하게 전해 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회를 비판하고, 못된 인사를 비판하고, 시인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일침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좋은 시들이 너무많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중 내 심중을 울린 몇편을 소개해 본다. 

<해거름> <유배> <옛날> <불행> <조국> <문명> <못 떠난다> <눈꽃> <한밤> <아침>

<은하수 저쪽까지> <낙원을 꿈꾸며> <시인1>…

춥고 긴 겨울밤, 따뜻한 생강차와 우리들의 시간을 한번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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